12월 개봉이라는데, 아무도 불러주는 이 없어 기내 시사회(?)를 통해 얼떨결에 봤다.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오면서 시베리아 상공의 독일 국적기에서 코딱지만한 모니터로 볼 수 있었다. 때마침 기내 부엌에서는 기내식 데우는 냄새가 솔솔 풍겨서 문자 그대로 생생한 입체영화가 됐다. 덕분에 뻣뻣한 기내식을 줄리아가 만든 프랑스 요리처럼 맛있게 먹어줄 수 있었고.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확실히 미국인은 프랑스 요리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약간의 두려움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일상의 밥상에 오르는 닭고기 요리가, 머핀이, 초콜릿 케이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서 못 참는다는 게 느껴진다. 그 원적이 프랑스라는 걸 확인하면서 요란하게 수다를 떨고 안도감에 빠지는 것 같다. 실제로는 파스타와 피자 같은 이탈리아식을 더 많이 먹지만 말이다- ‘그건 예술이 아니잖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군.
영화 <줄리 & 줄리아>의 구성은 좀 독특하다. 1950년대 미국 외교관의 부인으로 요리에 빠져 초짜에서 마스터가 된 줄리아 차일드, 그리고 당대의 평범한 미국인 여자 줄리 파웰이 두축이 된다. 줄리아 차일드는 두권의 요리 관련 책을 냈다는데, 줄리 파웰은 그의 두 번째 요리책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를 보고 직접 요리를 하기로 결심한다. 평범한 계약직 공무원이자 주부인 줄리는 낡고 보잘것없는 아파트 부엌에서 좌충우돌하며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가는데, 그 결과가 <줄리 앤 줄리아: 365일, 524개 레시피, 하나의 조그만 아파트 부엌>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크게 히트했고, 한국에서도 영화 개봉에 앞서 번역 출간됐다. 누군가 이 책을 가지고 제2의 줄리가 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거리는 50년대 프랑스와 당대 미국 사이의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특히 요리에선 더 그럴 수 있는데, 하다못해 밀가루와 달걀의 질이 달라 전혀 엉뚱한 요리가 탄생하기도 한다.
요리 블로거들이 참 많다. 요리를 해서 블로그에 올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다. 그래도 아마추어 특유의 신명으로 재미있게 하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라. 생판 모르는 요리를 책을 보면서 따라하는데, 게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않은 오븐까지 켜놓으면 난리가 난다. 줄리처럼 곁에서 아기라도 울어봐라. 요리는 타이밍이라는데, 말짱 도루묵이다. 요리만 하기도 버거운 걸,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만드는 과정 사진을 찍어가며 요리가 탈까 노심초사해야 한다(내 후배 하나는 요리를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오븐을 생전처음 켰다가 안에 넣어둔 오븐용 장갑을 홀랑 태워먹고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이걸 일이라고 하면 아마도 ‘옛수, 당신이나 하슈’ 하며 집어던질 여자들이 더 많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는 프랑스 요리가 등장하지만, 배가 고파질 영화다. 게다가 언제나 관객을 배신하지 않는 메릴 스트립이 있지 않은가. 직업 요리사로서 부러운 건 왜 이리 프랑스의 부엌은 넓고 도구들은 좋단 말이냐. 영화에 나오는 구리 냄비 하나 사려면 수십만원은 줘야 한다는 거, 알고들 군침 삼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