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공연별책부록을 만들면서 눈도장을 찍어놓은 작품이다. 제목부터 추리물 냄새가 솔솔 나더니 뒤이어 본 포스터. 총 맞아 깨진 유리(임에 틀림없을) 틈새 사이로 바바리코트와 중절모에 시가를 문 사내, 그리고 금발의 여인이 보인다. 오홋, 필름누아르 같은걸. 그리고 출연 크레딧을 보니 안 보면 후회할 성싶더라. 내가 본 공연은 박정환, 김동화, 오승준이 이끄는 무대였다.
왼쪽에는 재즈를 라이브로 연주할 세션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피아노 한대가, 그 사이에 원형 무대가 있다. 원형 무대는 회전식으로 문 위치가 바뀌면서 여러 장소로 사용된다. 소극장의 협소함과 단순함을 탈피한 탁월한 선택 같다. 또한 푸른빛이 감도는 무대 조명도 긴장감을 부추긴다. 백만장자의 죽음, 그의 유일한 상속녀를 찾는 금발의 비서, 여기에 탐정과 사라진 백만장자 딸의 미묘한 관계까지. 미리 알고 온 대략적인 줄거리 또한 이 뮤지컬이 홍보 카피로 강조한 ‘하드보일드 미스터리’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대사와 노래를 따라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극은 진행될수록 긴박감이 약해진다. 배우들의 노래가 잘 안 들려서 그런가 싶었으나 그보다는 플롯 문제였다. 탐정 샘과 비서가 찾는 상속녀는 예상보다 쉽게 알아차리고, 블론드의 다중인격과 그녀를 사랑하는 샘의 행동은 억지스럽다. 특히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의 반전은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나른함을 무대 왼쪽에 자리한 재즈 콰르텟이 환기시킨다. 그래드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색소폰 등 네명으로 구성된 라이브 연주는 별개의 재즈공연을 본 듯하다. 그리고 발견한 보석 하나. 바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품의 해설자 역할을 하는 ‘버디’ 역의 오승준. 그는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역을 소화하는데,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사랑스럽다.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에 싫증이 났거나, 소극장에서 굵직한 배우를 만나고, 라이브 밴드를 즐기고 싶은 분에게 권한다. 추리물 팬이라면 멀리하는 게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