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이 추운데 왜 하필 북유럽이냐는 염려는 한귀로. 헬싱키, 스톡홀름, 코펜하겐, 이렇게 딱 대표 도시만 추렸으니 그닥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깟 도시의 추위쯤! 도시는 늘 쾌적한 빌딩과 따뜻한 온기를 제공해줄 현대인의 맞춤형 주거지가 아니었던가. 결론은 도시건 뭐건 겨울은 결코 여행자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북유럽의 겨울해는 살인적으로 짧았다. 내 기준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볼까 하는 오후 4시(안다, 내가 좀 늦다), 이곳의 인간들은 집에 갈 채비를 완벽히 마쳤다. 북유럽 감성의 시크한 숍들에는 어김없이 ‘주중 12~4시, 토요일 12~2시, 일요일은 휴무’라는 상상도 못할 짧은 오픈시간이 정갈하게도 적혀 있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마감을 끝내고 좀비처럼 달려온 10시간 비행이었다. 지는 해의 바짓가랑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충실하면 되리라 거듭 다짐했다. 그나마 여행 날짜의 중간에 낀 스톡홀름은 괜찮은 편이었다. 주말에 버젓이 걸치고 있는 헬싱키와 코펜하겐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코펜하겐의 빈티지한 놀이공원 ‘티볼리’는 아주 제대로 겨울휴무 중이었고, 헬싱키의 자랑거리인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모든 숍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모두 잠겨 있었다. 알바 알토가 건축한 서점 앞에서 망연자실 발길을 돌리는 순간, 기대했던 북유럽이 막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이 냉정한 오픈시간 외에 다들 뭘 하고 지내는 걸까. 헬싱키에서 제법 알려진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 갔다(달리 할 일도 없고). 그리고 그곳에서 아마 헬싱키 주민 절반 정도는 주일엔 예배를 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처럼 방황하는 관광객을 바라보던 중, 비행기에서 만난 헬싱키 주민의 충고가 떠올랐다. “여긴 여름과 겨울이 완전히 다른 나라예요.” 울화가 치밀었다. 이놈의 복지국가! 새삼 서울이 그리웠다. 글로벌 기업이 물밀 듯이 밀려든 명동이, 24시간 불야성인 동대문이, 휴일에도 데이트족으로 넘쳐나는 삼청동이, 마트와 편의점이 내 눈길 닿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든 동네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천국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불현듯 서울의 동포들이 한없이 불쌍해졌다. 돈을 쓰기에 더없이 편리한 글로벌 도시. 결국 그곳에 사는 우리는 24시간을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무지막지하게 비정한 세상의 국민이었다. 기를 쓰고 자기 나라를 찾아온 지구 반대편 이방인에겐 이토록 차갑게 무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 놀랍도록 심심한 북유럽의 겨울이 막 부러워지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