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영화 보면서 제일 못 참는 게 민폐 캐릭터예요. =아유. 지도 못 참아유(지독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영어 악센트를 충청도 사투리 스타일로 굳이 바꿔봤습니다. 지역감정이라는 말 하지 마시길. 솔직히 충청도 사투리 좀 웃기잖아유-편집자).
-그렇게 동의하시면 안되죠. 지금 본인 이야기하는데. 여하튼 전 영화 보다가 민폐 캐릭터 나오면 짜증으로 숨이 가빠지는 동시에 온갖 혐오스러운 욕지거리들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걸 막을 도리가 없어요. =아니. 제가 그렇게 민폐 캐릭터였나유?
-민폐죠 민폐. 사실 올해 최고의 민폐 캐릭터는 아니에요. 유럽영화제에서 했던 에릭 종카 영화 <줄리아>의 주인공 줄리아를 뛰어넘을 민폐 캐릭터는 조만간 나오기 힘들 거거든요. 베를린에서 그 영화 보다가 복장이 터져서 뛰쳐나가려는데 양옆에 앉은 독일 기자들이 꿈쩍도 안 하는 바람에 갇혀서 2시간 민폐 여정에 넋을 잃었잖아요. 민폐가 어찌나 짜증스러웠던지 한동안 그걸 연기한 틸다 스윈튼도 꼴보기 싫더라니까. 사실 틸다가 좀 지나치게 오버 연기를 한 탓도 있지만. =이거 <줄리아> 가상 인터뷰인가유?
-사실 그분을 모시고 싶었지만 정식 개봉이 아니라 비커스씨를 부른 겁니다. 민폐의 정의를 한번 내려보려고요. =사실 지는 민폐인지도 모르고 그랬거든유. 지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싶어서 감염이 된 게 아니잖아유. 몸은 저절로 바퀴벌레 새퀴들처럼 변해가지유. 장인어른은 저를 실험용으로 쓰려고 사냥하지유. 배는 고프지유. 살긴 살아야겠지유.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민폐를 좀 끼친 모양인디, 그걸 가지고 꼭 민폐 캐릭터네 뭐네 그럴 필요까지 있나유.
-비커스씨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문제는 비커스씨가 너무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거예요. 원래 고만한 SF액션영화 주인공이라면 어느 정도 관습적인 영웅심리 같은 게 있게 마련인데 그런 게 하나도 없으니까 좀 짜증이 나는 거죠. =엥? 그건 이 영화에 대한 칭찬 아닌가유? 그러니까 닐 블롬캠프 감독님이 영화를 현실적으로 잘 만드셨다는 야그잖아유? 근데 왜 짜증이 나세유?
-설명하자면 이런 거예요. 제가 초창기 켄 로치 영화를 존경하면서도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면요. 그 사람 영화 속 노동자 계급들이 너무 현실적이잖아요. 무식하고 못나고 비참하고 비천하죠. 그러다보니 그게 진짜 현실인 건 알면서도 도저히 괴로워서 영화를 못 보겠더라고요. 저야 영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려 노력하며 보지만 제 할머님께 보여드리면 ‘시스템의 잘못 때문에 저 인간들이 저 모양으로 사는구나’ 싶은 게 아니라 ‘저 모양 저 꼴이니 평생 저 꼬라지를 못 면하지’라고 생각하실걸요. =어쩌겠어유. 그게 바로 <디스트릭트9>의 장점이기도 하잖아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난 정치적 과거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고유. 사실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면 벌레들은 모두 똑똑하지만 핍박받는 존재들이고 흑인 갱단들도 알고보면 백인 제도권에 대항하는 전사들로 막판에는 그려졌을 거유. 근데 이 영화에서는 엘리트 주인공 벌레 빼면 벌레들은 다 병신들이고 흑인 갱단은 벌레 등쳐먹고 사는 사이비 주술가들이잖아요.
-진짜 못됐어 이 영화. 뭐, 그게 좋기는 해요. 게다가 마지막을 그렇게 끝내다니. 아무 희망도 없이 쓰레기장에서 꽃이나 만드는 비커스씨만 불쌍하게 됐어요. =에이. 몇년 뒤에는 벌레들이 돌아와서 제 몸을 고쳐줄 거구만유.
-그거야 이 영화 속편이 만들어져야 가능한 일이고. 과연 만들까? 만들까? 안 만들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