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미술’이라고 들어보셨는가? 아마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 같다. SF영화도 있고, 소설도 있고, 만화도 있는데, 왜 미술만 없는 걸까. 최근 화제가 된 <디스트릭트9>을 생각하다가 문득 미술 사조에도 SF 장르가 있을까 싶어 인터넷 검색창에 ‘SF 미술’을 키워드로 넣고 검색해보았다. 눈에 띄는 건 SF영화의 미술팀 얘기 정도? 그러나 장르가 없다고 존재 가능성을 무시하면 안된다. 최근 진행 중이거나 전시 예정인 몇몇 미술전에서 SF 고유의 테마를 주제로 삼아 전시하는 작가들을 발견했다. 이들을 감히 SF 미술이란 낯선 이름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자는 강영호 사진작가다. 그는 <파이란> <집으로…> 등의 영화 포스터를 촬영하다 예술사진의 품으로 지금 막 뛰어들었다. 강영호는 피사체를 촬영할 때마다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행동으로 유명한데, 그러다가 예술가와 배우의 모습을 함께 가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11월25일부터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춤추는 사진작가 강영호전: 99 Variations>에서 강영호는 99개의 모습으로 반복 변주된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자 예술가 강영호가, 배우 강영호가, 여성·남성적인, 혹은 요괴 같은 강영호가 살아 움직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작가는 “자동으로 분리수거되는 자아의 각질들이 쌓여가는 걸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SF적인 표현이다.
<가상선: The Imaginary Line>(갤러리 현대, 11월15일까지)과 <신호탄>(국립현대미술관, 12월6일까지)이라는 두개의 전시에 참여 중인 최우람 작가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기계생명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직선적으로 SF적인 작가다. 최우람은 가상의 기계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 생명체에 대한 정보를 텍스트로 작성하며, 심지어 학명도 붙인다. 예술가에 의해 생명을 얻은 기계는 마치 지금 막 발견된 희귀 생명체처럼 신비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그 모습이 궁금하다면 신작 <비밀의 추>가 전시된 옛 군국기무사 2층을 찾아보라. 기무사의 비밀을 한 아름 품은 미지의 생명체가 여러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