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공부의 효용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메뉴판을 읽고 주문을 할 때, 또 하나는 그 언어로 쓰인 시를 읽을 때다. 시어는 유독 단어 하나하나, 구두점 하나하나가 제각기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처럼 흐르며 서로 엮이고 관계를 맺어 새로운 길을 내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로 옮겨서는 그 즐거움을 온전히 맛볼 수 없다. 특히 시를 소리내 읽을 때. 신간 리뷰를 위해 최영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시>를 보다가 작은 소리로 꺅 비명을 지른 것은 좋아했던 시를 여러 편 다시 만나서였다. 그중 하나가 자크 프레베르의 <알리칸테>다. 프랑스어를 배워서 가장 좋았던 건 프랑스어로 된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불행히도 생선 이름과 고기 부위 이름을 매번 헷갈려 메뉴읽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중 가장 즐겨 읽었던 시는 자크 프레베르의 것들이었다.
프레베르의 시는 지극히 영상적이다(회화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카메라가 팬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에 빠져들게 된다. 때로는 줌인, 줌아웃하는 느낌도 받는다. 거기에 혀끝에서 미끄러지는 그 프랑스어만의 느낌이라니. 그의 시 중에도 나는 특히 <알리칸테>를 좋아했는데, 얼마나 좋아했느냐 하면 처음 썼던 블로그 주소가 알리칸테(alicante)였다. 런던에 갔을 때 그곳으로 가는 항공사 광고가 빨간 이층버스에 붙은 걸 굳이 찍어오기도 했다. 알리칸테는 스페인의 동해안, 그러니까 지중해에 닿은 휴양도시 이름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라도 상관없었고, 실존하지 않는 장소라도 좋았다. 알리칸테라는 말을 입 안에 굴리는 느낌부터를 사랑했으니.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의 달콤한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사로움.” 이국의 밤 냄새랄까…. 나른하고, 입가엔 어쩔 수 없는 미소가 반쯤 걸려 있고, 따뜻하고 상쾌한 바람과,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일이 두렵지 않은 마음 같은 게 마구 엉켜 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감각적인 즐거움을, 이 시 한편이 훅 불어넣는다. 프랑스어로 읽으면 더 좋다. 10년 전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운 사람도 기억할 단어들의 조합이 놀랍게 풍부한 풍경을 그린다. 코끝에 오렌지 향이 스친다. 한줌의 언어가 할 수 있는 둘도 없이 아름다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