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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장영엽 2009-10-29

<패션사진의 살아 있는 신화: 사라 문>/11월29일까지/예술의전당/문의 02-710-0764

엘레강스 지수 ★★★★ 트렌드 지수 ★★★★★

<장 폴 고티에>(1998)

패션 잡지를 보다가 가끔 흠칫 놀란다. 엄밀히 말하자면 패션 잡지 속의 ‘사진’을 보고 놀란다. 잡지에서 떼어다 액자 틀에 넣고 그대로 미술관으로 직행해도 될 것 같아서다. 솔직히 말해 유명 패션 모델과 배우를 섭외해 예술 사진을 찍는 멜라니 풀렌의 작품과 클림트와 에곤 쉴레에 영감받아 촬영한 패션 화보는 무엇이 다른가. 이미 패션과 예술은 서로의 경계에 침투한 지 오래다. 지금은 당연한 이 진리가 평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모두 그랬다. 예술 분야에서 늘 앞서 나가던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내 조명, 옷의 형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앵글, 남성 작가, 이 세 가지 조건이 당시 파리 패션사진계를 뒷받침하는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니 야외 촬영, 흐트러진 실루엣, 여성 작가의 등장이 얼마나 도발적으로 비췄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예측 가능하다.

사라 문은 1960년대 파리 패션사진계에 위와 같은 혁명을 불러온 여성 사진작가다. 사진가이기 이전에 9년 동안 패션모델로 활동한 그녀는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해보지 않은 이들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레이스 밑단, 절묘하게 떨어지는 어깨선, 손의 작은 움직임이 그녀의 카메라에 담겼다. 과감하기로도 남성들에 뒤지지 않았다. 패션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은 뎅강 잘라내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장되게 느껴질 정도로 렌즈를 들이대는 형식이었다. 머리 윗부분을 담지 않아 드레스의 실루엣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샤넬>(1997)이나, 어느 소설의 삽화에 등장할 법한 <장 폴 고티에>(1998)의 회화적인 드레스 사진을 보면 사라 문의 사진이 오늘날 패션 화보의 스타일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패션사진의 살아 있는 신화: 사라 문>에서는 사라 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60여점의 사진 작품을 전시한다. 사라 문은 1972년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에게만 사진을 의뢰한다는 명품 달력 피렐리의 촬영을 여성 최초로 맡았는데, 역대 피렐리 달력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사라 문의 달력 사진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안데르센의 소설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브로 연출한 영화 <서커스>(2002)도 공개된다. 최근에야 프라다나 구치 등 패션업계 안에서 단편영화 제작 움직임이 활발하다는데, 늘 앞서가던 패션사진계의 거장은 이번에도 한발을 먼저 내디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