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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시대착오적인, 그래서 더 그리운

《Black Gives Way To Blue》 앨리스 인 체인스 | EMI

후회와 안도 지수 ★★★★★ 트렌디함 지수 ★★

앨리스 인 체인스의 새 앨범 《Black Gives Way To Blue》가 발매되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대략 두 종류다. “오, 아직도 활동하나?”와 “그게 누군데요?”다. 14년 만의 새 앨범이니 그럴 만도 하다.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고 투덜대던 사람이라면 양팔 번쩍 들고 환호할 것도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심경이 복잡하다. 솔직히 말하면 앨범을 받자마자(그렇다, 프로모션 CD를 받았다) 바로 듣지 않고 책상 옆에 밀어뒀다. 오래 전에 헤어진 애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부담스러운 뭐 그런 감정이다. 얼마나 변했을까 또 어떻게 변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10여년 전의 내 모습과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언제나 유쾌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곡부터 묵직하다. 1990년대 초반 시애틀 그런지의 전성기를 옮겨놓은 것 같다. 두 번째 트랙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렇다. 아이고, 10년 만에 만난 옛 애인에게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냐?”고 묻는 심정이 되어 그제야 앨범을 뒤적인다. 보컬 레인 스탤리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죽은 건 2002년 4월19일, 34살 때였다. 새 보컬 윌리엄 듀발은 그의 흔적을 충실히 재현한다. 술과 담배로 며칠 밤을 새운 목소리처럼 카랑카랑하다. 제리 칸트렐의 기타 프레이즈도 여전히 날카롭고 마이크 스타의 베이스와 숀 키니의 드러밍도 여전히 믿음직하다. 고막을 긁어대는 <Check My Brain>과 <A Looking In View>를 듣고 있으면 얼마 전 발매된 펄잼의 사운드가 상대적으로 나긋하게 여겨질 정도다. 레인 스탤리에게 바치는 추모곡인 마지막 트랙 <Black Gives Way To Blue>까지 듣고 나면 그리움과 후회와 안도 같은 것들이 밀려온다. 지금 레인 스탤리는 없다. 나는 그보다 한살 더 오래 살았다. 앞으로는 그보다 더 나이 먹을 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솔직한 심정(여러 번 솔직해지는데)으로 이 앨범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게 과거의 유산을 매끈하게 다듬은 음악을 선보인다. 펑크와 슈게이징과 일렉트로니카를 어떻게 팝 음악처럼 결합하느냐가 관건인 시대에 이들의 그런지 록은 확실히 구식이다. 그런데 혹은 그래서,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무의미하다. 그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추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