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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아버지
2001-12-06

<갓 앤 몬스터>의 주인공 제임스 웨일

<록 허드슨의 홈 무비>라는 영화가 있었다. 제1회 혹은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1992년작 다큐멘터리인데, 그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는 에이즈로 죽은 미남 배우 록 허드슨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딱딱하게 그의 삶을 다룬 평범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동성애자였던 그가 출연했던 30여편의 영화들에서 동성애 코드가 풍겨나는 장면들을 모아놓은 아주 특이한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화들이 제작되었을 당시의 관객이 그냥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이, 그가 동성애자인 것이 다 알려진 지금의 관객이 보기에는 아주 의미심장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록 허드슨의 홈 무비>는 관객을 시종일관 웃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마초맨의 대명사로 살아가야 했던 불행한 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록 허드슨이 활동하던 당시 동성애자들은 사회적으로 분명한 소수의 집단이었다. 특히 마초적인 이미지를 팔아야 했던 할리우드의 남자배우에게,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배우로서의 생명에 문제를 야기시킬 정도로 큰 이슈였던 것은 분명하다. 록 허드슨이 배우라는 직업의 안정을 위해 스스로와 관객을 속이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이해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이번에 개봉된 영화 <갓 앤 몬스터>의 주인공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제임스 웨일은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이었다.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할리우드의 B급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던 그는,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일로 아주 유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이라는 입장이 남성미 넘쳐야 하는 배우와는 달랐던 게 사실이지만, 20세기 초반에 그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 제임스 웨일은, 1889년 영국 요크셔 지방의 더들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 때부터 구두 수선소나 방충망을 만드는 회사 등에서 일해야 했던 그의 운명을 완벽하게 바꾸어놓은 계기는, 그가 26살이던 해에 터진 세계 1차대전이었다. 특히 영국군으로 프랑스 전투에 참가했다가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무려 14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경험은 아주 결정적이었다.

그 기간 수용소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아마추어 연극을 연출하고 직접 연기를 해보는 등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전쟁 뒤 런던 극장가에서 배우로, 세트 디자이너로 또는 연출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가 연극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1928년작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라는 반전 연극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부터다. 당시 무명이었던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을 맡았던 이 연극은 이듬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할 기회를 잡았고, 제임스 웨일은 이를 계기로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에 진출한 그가 할리우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30년에 를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영화로 만들면서부터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가 될 데이비드 루이스를 만난다. 배우 지망생이었다가 훗날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데이비드 루이스는 그뒤 제임스 웨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30년대를 그의 연인으로, 조력자로 함께 보낸다. 그 전성기에 그가 만든 주요 작품으로는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투명인간> 등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할리우드의 B급 SF/호러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할로윈의 대부’라는 별명으로 미국인들의 뇌리에 어렴풋이 기억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시절은 그의 1937년작 <더 로드 백>(The Road Back)을 둘러싼 논란으로 서서히 끝나게 된다. 당시 기세가 등등하던 독일의 나치정권이 일종의 반전영화인 이 작품을 싫어하면서, 미국 정부와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리고 심지어는 배우와 제임스 웨일에게까지 수정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던 것. 결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모든 영화를 수입금지하겠다는 으름장에 스튜디오는 다른 감독을 시켜 영화를 재편집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를 계기로 할리우드에 실망한 웨일은 그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뻔한 영하 세편을 억지로 만든 뒤, 조용히 할리우드를 떠났다. 그와 동시에 데이비드 루이스와의 관계도 깨졌고, 이를 계기로 <갓 앤 몬스터>에 등장한 그의 독특한 동성애 편력이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하튼 그렇게 할리우드를 떠난 제임스 웨일은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프랑스에서 만난 새로운 동성애 파트너와 함께 화가로서의 삶을 산다. 그뒤 그가 잠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1957년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을 때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동성애자들인 감독과 제작진들이 함께 만든 <갓 앤 몬스터>가 그의 전성기가 아닌 그뒤의 시기를 다루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간 제임스 웨일을 이해하는 데 그 시기만큼 적절한 때도 없다는 것이 영화 속에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갓 앤 몬스터> 공식 홈페이지 http://ww.godsandmonsters.net/

제임스 웨일 홈페이지 http://www.geocities.com/Hollywood/Academy/4267/whalemain.html

제임스 웨일의 삶 홈페이지 http://www.sbu.ac.uk/stafflag/jameswhal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