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어. 앞으로는 그녀의 선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겠어.”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드워프 김리가 엘프 여왕 갈라드리엘을 만난 뒤 모든 것이 달라진다. 김리는 이후 여행에서 엘프인 레골라스와 단짝으로 행동하며 ‘엘프의 친구’란 별칭을 얻었으며, 후일 레골라스를 따라 드워프에게는 금지된 신의 땅 서역으로 떠난다. 김리의 인생을 바꿔놓은 갈라드리엘의 아름다움과 위엄은 어떤 것이었을까?
<반지의 제왕>이 영화화되고 케이트 블랑슈가 갈라드리엘 역을 맡는다는 게 알려지자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배우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 게 분명했다. 인간의 아름다움엔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림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그리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 현실적 아름다움일 뿐이다. 구체성은 상상력의 풍부함을 넘어서지 못한다.
출판의 역사를 바꿔놓고 있다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게임으로 출시되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책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시스템인 마법 사용을 보자. 대부분의 게임에서 마법을 거는 건, 사실은 게임 화면 위의 버튼을 클릭하거나 단축키를 누르는 것에 불과하다. 여러 마법들의 차이는 게임에서만 존재하지 플레이어 입장에서야 마우스 클릭 동작은 똑같다. 반면 게임 <해리 포터>에서는 <블랙 앤 화이트>에서처럼 마우스를 이용해 일정한 도형을 그려야 마법이 걸린다. 사소한 것이지만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생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빗자루를 타고 마법학교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곳곳에 감춰진 비밀장소를 탐험한다. 퀴디치 경기나 마법 대결을 통해 실력을 길러가면서 더 큰 비밀을 찾기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 책에서 익히 보았던 론이나 헤르미온느 같은 친구들이 말을 걸어오고 도움을 준다. 소설 속에서 글을 읽으며 떠올렸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영화치고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팬들에게서 원작을 망쳤다는 비난을 받는 게 보통이고, 기껏 찬사라고 받는 게 원작을 잘 살렸다는 얘기 정도다. 유례없이 많은 팬들을 의식했는지 게임 <해리 포터>는 소설을 충실히 재현하는 입장을 취했다.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아서, 크고 환상적인 건물들과 캐릭터 디자인. 마법으로 풀어야 하는 여러 문제, 그래서 얻는 색색깔 젤리나 귀여운 개구리 초콜릿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게임이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겐 그냥 평이하게 재미있는 게임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과 특수효과가 동원되었어도 책을 읽으면서 펼쳐졌던 상상력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영상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세계를 독자적으로 창조해내는 수밖에 없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샤이닝>처럼, 원작과는 다른 맛을 창조해낸 영화가 있다. 아쉽게도 <해리 포터>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게임만의 특성을 살려 텍스트로는 느낄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야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텍스트를 영상으로 대치하기 위해 노력했을 따름이다. 게임 <해리 포터>는 팬 컬렉션의 빼어난 수집물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