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지수 ★★★★ 스펙터클 지수 ★★★★
단단한 무대가 물줄기로 화해 나룻배를 실어나르는가 하면, 앙상한 시체 같은 촛대들이 번쩍이면서 수면 아래서 솟아오른다. 거울 저편에 그림자처럼 스며든 팬텀이 크리스틴을 이끌고 거울 속 세계로 사라지고, 라울을 겨냥한 팬텀의 지팡이에서 불꽃이 터져 폭발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 예술이 구현하기 불가능할 법한 현란한 무대 장치로 한수 먹고 들어가는 공연이다. 특히, 오프닝. <The Phantom of the Opera>가 심장이 터질 듯 연주되는 가운데 힘없이 쓰러져 있던 샹들리에가 스르륵 천장까지 떠오르는 장면에선 탄성이 절로 나온다. 팬텀을, 라울을, 크리스틴을 한국어로 연기한다는 건 분명 오리지널의 매력을 얼마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원작의 화려함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그 유명한 뮤지컬 넘버 <The Phantom of the Opera>의 압도적인 화음을, 가사의 뜻을 음미하면서 현장에서 듣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 윤영석과 양준모, 홍광호, 정상윤, 김소현, 최현주 등 최근 눈에 띄게 상승세인 뮤지컬 스타들을 캐스팅한 8년 만의 한국어 <오페라의 유령>은 관객 입장에서 실보다 득이 훨씬 많은 공연이다.
작곡과 각본을 담당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성장 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오페라의 유령>은 극 자체부터 오페라적인 요소가 다분한 뮤지컬이다. 배경은 아예 1911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요, 주인공들은 오페라의 유령 팬텀과 새로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해당 극장의 재정 후원자인 귀족청년 라울이다. 극중 웨버가 작곡한 오페라의 몇 구절을, 칼롯타와 크리스틴이 직접 시연하기까지 한다. 런던 초연시 메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성악가 출신이었고, 이번 공연에 팬텀으로 낙점된 배우 중 하나인 양준모가 오페라로 데뷔했다는 사실은 우연만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쇼적인 측면, 영화로 치면 스릴러의 그것에 해당할 초현실적이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극중극 형식으로 고대 이집트 무희들이 군무를 선보이거나 가면에 얼굴을 숨긴 채 무도회를 벌이는 일부 장면은 더더욱 그렇다. 아트서커스, 마법쇼 등 21세기의 새로운 공연 장르에 익숙한 현대 관객이라면 조금 키치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대작의 스펙터클함을 선호하는 뮤지컬 팬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