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 중 <한겨레21>과 맞먹는 진보성과 성실성, 그리고 시적 감수성을 가진 프로그램은 <시사매거진 2580>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시사매거진 2580>은 이전과 확실히 차별되는 노선을 걸음으로써 고정시청자를 돌아서게 하고 말았다. <시사매거진 2580>의 최근 행보는 진보 대신 보수로, 성실성 대신 선정성으로, 시적 감수성 대신 감상적 감수성으로 물갈이를 위해 독하게 마음먹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1월25일 방송된 ‘왜 안산인가’. 방송 뒤 게시판은 성토로 가득 찼다. “안산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몇번 가본 적이 있는뎅… 안산이 그런 덴 줄 몰랐어여… 안산시민 여러분… 그저 단세포졸속방송의 피해자거니… 마음 잡수십시요….”(misorose) 또다른 반응도 있다. “음, 오늘 방송을 보고 안산이란 곳은 참으로 퇴폐향락 도시란 걸 알게 됐다. 예수님이 소돔과 같은 이 도시를 벌하실 거다.”(fk70) 소돔과 같은 도시라. 한 도시가 어떻게 갑작스럽게 소돔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지. ‘왜 안산인가’의 ‘왜’는 ‘왜 안산에는 불법 노래방과 가출 청소년이 많은가’에 대한 ‘왜’이다. 하지만 ‘왜’에 대한 물음에는 ‘공단 부도 뒤 실업자 양산’과 ‘원래 가정주부가 많다’, ‘주인이 없는 도시다, 익명성의 도시다’는 빈곤한 대답을 하고 대부분 시간은 불법이라고 칭한 노래방을 보여주는 데 보냈다. 안산은 ‘불법 노래방’이 많다는 특징이 있을 뿐 방송중에 나온 대로 단란주점과 룸살롱은 줄어들고 있다. 술집 접대부로 쉽게 나설 수 있게 한다는 ‘도시의 익명성’은 어디 안산 이야기뿐이랴. 마찬가지로 거기가 안산인지 일산인지 동두천인지 인천인지 안양인지, 서울의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도시는 비슷하다. 그야말로 왜 안산인지가 궁금하다.
11월18일에는 <시시매거진 2580>에 연예인 보도가 등장했다. 최근 창간한 한 영화주간지는 스캔들 특집을 낸 2호에 이어 3호에서는 황수정 사건의 보도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 변화의 기점을 <…2580>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2580>의 보도는 스포츠지와 다를 뿐 다른 TV 연예프로와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중간에 전화통화를 통한 질문에는 “최음제라는 표현이 개입되면서 허준의 예진아씨가 색녀가 되어버린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라는 질문을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신의학 박사가 나와서 진단하고, 황수정 아버지가 나오고, 황수정 사건과 관련해 피해를 본 배우가 나오고, 구색을 갖추려 한 내용은 점잖았다. <…2580>의 결론은 이렇다. “스타라는 이름의 인기 연예인, 그들은 옐로 저널리즘의 희생양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인권도 마땅히 보호돼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연예인 스스로가 몸가짐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대중의 우상이자 공인이기 때문입니다. 스타들의 일탈된 행동 하나하나는 곧바로 시청자들에게 전파되고 그 해악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도의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스타들의 몸가짐이 더 문제였다는 것인가.
11월11일에 방송된 ‘빨래 전쟁’이라는 꼭지에서는 대우전자가 출시한 ‘세제없는 세탁기’를 다루었다. “정말 세제를 쓰지 않고도 빨래가 가능한가”라는 실험으로 문을 연 꼭지는 이야기 흐름을 보건대 <…2580>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대우세탁기 실험-다른 회사의 반응-(“이에 반해 대우전자쪽은 마치 누군가가 좀 건드려주었으면 하는 분위기입니다”)-대우세탁기 반응-세제없는 세탁기 개발 벤처기업 인터뷰-세제회사도 긴장상태다-세제회사가 하는 또다른 실험2-대우세탁기 실험결과(대우세탁기가 더 잘 빨렸다)-세제회사 실험결과(세제를 넣으니 더 잘 빨렸다)-대우세탁기의 세제회사 실험에 대한 반론-(“국내에서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정작 무세제 세탁기술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쪽은 외국의 업체들입니다”)-외국업체 반응.
11일 방송에는 ‘강한 여인 강한 아들’이라는 꼭지로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이라는 책을 쓴 미국 작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강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못난 아들이라도 대통령만 되면 강화되는가. 열을 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무도 몰락하리라 생각지 않았지만 어떤 가수가 몰락을 예견했던 것이 있다. 달. 아무도 몰락하리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몰락중인 것이 있다. 달이 몰락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고, <…2580> 살리기 모임을 결성해서라도 막아보고 싶다는 생각, 충정이다. <시사매거진 2580> MBC 일 밤 9시45분∼10시35분 구둘래 kuskus@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