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인드 지수 ★★★★★ 별미 지수 ★★★★
춤바람으로 도시의 묵은 때를 벗긴다. 올해 12번째를 맞는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SIDance)가 스스로 내건 미션이다. 시댄스는 “일상이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춤과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15개국 40개 무용단을 초청했다. 시댄스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용 축제.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며, 그동안 모리스 베자르, 조지프 나지, 아크람 칸 등 세계적 안무가들을 불러들여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위무하고 자족했다면, 12번째 생일을 맞을 순 없었을 것이다. “쓸데없이 난해하거나 빨리 와닿지 않는 작품들은 배제하려 했다”는 이종호 예술감독의 말처럼, ‘시댄스 2009’ 또한 관객에게 직접 말 거는 작품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선정했다.
‘춤 보러 갑시다’라고 맨 먼저 꼬드기는 작품은 이스라엘 수잔 델랄 센터가 제작한 바락 마샬의 <몽거>. ‘무자비한 여주인에게 시달리는 10명의 하인들’을 주인공 삼은 작품이다. 지난해 10월 초연 당시 빠른 호흡과 독특한 유머로 무장한 삐딱한 시선이 호응과 찬사를 얻었다. 장 주네의 <하녀들>과 로버트 알트먼의 <고스포드 파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연극과 영화에서 침묵의 신체가 무엇을 수혈받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길> <8과 1/2> 등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 6편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소재 삼아 몸의 언어를 직조한 아르테미스 무용단의 <이상한 사람들-페데리코 펠리니>도 같은 이유에서 추천한다.
한편, 폐막작인 이탈리아 국립 아테르발레토 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 발레단의 <라디오와 줄리엣>은 ‘변주’의 맛을 비교, 음미할 수 있는 기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도회는 바이크 라이더들의 집회장으로 변하며, 특히 <라디오와 줄리엣>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끌어다 쓴다. 라디오헤드의 팬이라면 귀 쫑긋 세울 법하다. 힌두교 사상과 영국의 모던댄스, 일본의 미디어아트가 한데 어우러진 <푸루샤르타-탄생에서 해탈까지>, 철학적 문제제기를 흡인력있는 안무로 수월하게 풀어낸 질 조뱅 무용단의 <검은 백조>, 몸뚱이 하나로 시공간을 확장하는 실험을 거듭해온 안성수 픽업그룹의 <음악그리기>, 거리의 전사들이라는 호칭 대신 무대를 택한 춤꾼들의 <힙합의 진화Ⅲ>, 2007년 세비야 플라멩코 비엔날레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사벨 바욘의 <라 푸에르타 아비에르타-열린 문> 등도 국경없는 향연에 참여한다. ‘춤추는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남산N타워, 이태원 거리 등에서 무대 없는, 동시에 장벽 없는 춤판도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