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천기의 흐름을 읽는 것으로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한다. 그런 미실을 백성들은 경외하고 두려워한다. 알고 보면 과학의 힘을 빌린 이 음모성 짙은 연극에 미술감독이 있다면 단연 미실의 동생 미생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미생은 하늘의 뜻이 평범하게 알려지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불상이 있다면 솟아올라야 하고, 우물이 있다면 그건 핏빛으로 물들어야 한다. 창의성과 지력을 사용해 하늘의 경고를 더욱 비극적이고 위험하게 포장하는 그의 역할은 예술가를 위시한 과학자다.
뛰어난 과학자는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명제는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산이다. 경험과 이론이 결합된 과학을 주장했던 다빈치에게 인체 해부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인물화나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려진 풍경화는 과학의 완성이나 다름없었다. “회화는 화가의 마음을 자연의 심성 그 자체로 전환시켜 화가를 자연과 미술 사이의 해설가로 만든다”는 말처럼 그는 과학과 미술이 다른 학문이 아님을 굳게 믿었다.
현대미술계에서 다빈치와 미생의 계승자를 꼽는다면 올라퍼 엘리아슨의 이름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덴마크 출신의 이 아티스트는 자연을 캔버스와 스크린 위에 끌어들여 자기 방식대로 재창조하는 재능을 가졌다. 수조 물에 반사 굴절시킨 빛은 맞은편 스크린 위에서 물결치는 오로라 기둥이 되고, 전시장에 설치한 거대한 인공 태양은 작가의 고향에서 흔히 보는 백야(白夜)를 연상케 한다. 놀랍게도 이 작업들은 수십명의 건축가, 과학자, 연구원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되고 있다. 1995년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올라퍼 엘리아슨 스튜디오’를 설립한 엘리아슨은 예술의 창조 주체로 기술자들을 받아들이는 모험을 시도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유사 자연(Artificial Nature) 안에 서는 경험은 어떨까. 10월9일부터 열리는 엘리아슨의 두 번째 한국 개인전에서 직접 확인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