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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멜로,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9-09-29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김용균 감독

- 시간이 꽤 걸렸다. 후련하지 않은가. = 글쎄, 막상 끝내려고 하니까 좀 섭섭하다. 너무 오래해서 그럴까? 나도 모르게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웃음)

- 예전 인터뷰를 보면 항상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하는 게 보였다. 상업영화감독으로서는 당연한 거지만, 그런 기대가 <불꽃나비>에서는 더 크지 않을까 싶다. = 앞으로는 아예 그런 거 안 하려고 한다. (웃음) 두 작품 다 상업적으로는 성과를 못 내지 않았나. 나는 항상 관객과 만나려고 했다. 그러면서 흥행성 면에서 모자란 부분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감동 코드나 드라마트루기에서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와니와 준하>는 성의있게 만든 작품이지만 친절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가진 실력의 한계였다. 하지만 <불꽃나비>도 두렵고 걱정스럽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만약 또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는 내 한계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 <불꽃나비>는 어떻게 연출하게 됐나. = 이번 작품은 제의를 받았다. 싸이더스의 김미희 대표가 <와니와 준하>를 좋게 보셨다더라. <불꽃나비>는 서사물이고 무협영화지만, 포인트는 멜로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물론 걱정은 되셨겠지. 사이즈가 큰 영화인데, 나는 경험이 없지 않나. 하지만 그때는 그런 티를 안 내시더라. (웃음) 본인이 <아라한 장풍대작전>부터 <혈의 누>까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같이 경험이 부족한 감독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소재 이전에 원작자인 야설록 작가의 이름과 김용균 감독은 어울리지 않는다. =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낯설었다. 사실 나는 무협지 팬이 아니었다. 야설록 작가의 <남벌>을 봤는데, 그것도 이현세 작가의 만화로 본 거였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혹시 원작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어떻게 거절할까 궁리도 했었다. (웃음) 책을 읽고 나니 욕심이 생기더라.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 사이의 관계망이 잘 살아 있었고 캐릭터의 매력이 뚜렷했다.

- 아무래도 황후와 일개 무사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 끌렸을 것 같다. = 일단 멜로라 끌린 거지. 하지만 접근할수록 어려웠다. 처음에는 원작에 대한 호감 때문에 덥석 물었지만, 사실감있는 묘사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가 100% 허구가 아니라 실존인물을 허구에 대입한 거다. 그것이 힘이자 함정이더라.

- 민자영의 캐릭터가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이미 드라마에서 여러 번 묘사된 인물이라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을 텐데. = 그런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보는 사람이 느껴야지 내가 우긴다고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명성황후의 여성성에서 상상력을 동원했다. 남겨진 자료와 행적에도 명성황후의 여성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 않나. 그의 정치적 캐릭터에 대한 설명만 있다. 그나마 있는 게 고종에게 사랑받지 못한 설움 정도다. 기존의 드라마가 역사적 맥락에서 묘사했다면 <불꽃나비>에서는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차별점이 있을 것 같다.

- 개인적으로는 고종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찌질한데, 특별히 미워할 구석도 없는 것 같더라. = 사실은 좀더 긍정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자료는 지금도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게 많다. 식민사관에 의해 부정적인 면을 강조했던 게 예전 자료라면 지금 자료들은 고종이 가진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고종을 좀더 새롭게 묘사하고 싶었는데, 일단 주인공이 아니다 보니 욕심을 버려야 할 부분이 있더라.

- 액션 연출에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 늪에서 벌어지는 액션에서는 게임캐릭터간의 액션 같은 느낌이 있었다. = CG를 적극 활용한 부분에서 좀 그런 게 있다. 부정적인 느낌이었나? 액션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게 내 단점이라면 위안 삼을 수 있는 장점은 아예 백지라는 거였다. 기존의 액션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액션장면은 거의 CG 슈퍼바이저와 무술감독에게 일임했다. 나는 대략적으로 모호하고 추상적인 부분만 그렸다. 내 제안 중 하나는 사실감은 살리되 CG를 적극적으로 쓰면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앵글감을 주자는 거였다. 그 당시 <300>이 개봉했는데, 그런 장치를 가져와보고 싶더라.

- <300> 외에 다른 영화들을 참조했었나. = 관객의 입장에서 나에게 재밌는 영화들을 봤다. 정통 무협은 별로 재미없을 것 같더라. 기존 앵글이나 합과는 다른 걸 찾은 터라 주로 <무사 쥬베이>나 <무황인담> 같은 애니메이션을 봤다. <무황인담>이 인상적이었다. 사극의 틀을 가지고 온 리얼한 이야기인데, 애니메이션 특유의 공간 활용이 재밌었다.

- 광화문 앞에서 무명 혼자 대원군의 부대와 대결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나머지는 밤장면이지만, 여기는 낮장면이다. 게다가 핸드헬드로 촬영했다. CG 담당자에게는 무척 버거웠을 텐데. = 경험 많은 사람이었으면 말렸을 것이다. (웃음) 결과적으로는 잘 나왔지만, 고생이 정말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광화문 광장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실제 가보아도 규모가 꽤 크지 않나. 그만큼의 규모를 세트에서 재현하는 건 한계가 있더라. 결국 <모던보이>의 서울역 광장 장면처럼 블루 스크린을 깔아서 촬영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고정숏이고 우리는 핸드헬드숏이라… 사실 무식해서 무식한 짓을 한 거다.

- “무협멜로가 아니라 멜로무협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멜로라는 점에서 그리고 조승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와니와 준하>를 떠올리지는 않았나. = 떠올리려 하지 않았는데 떠올려졌다. 물론 이번 영화는 메인 시나리오작가가 따로 있어서 다른 걸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결국 연출자가 같은 사람이다 보니 스스로 <와니와 준하>의 기시감이 느껴질 때가 있더라.

- 동굴 속에서 자영과 무명이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 맥락상, 자세상의 차이는 있지만 <와니와 준하>에서 와니와 영민의 키스신과 상당히 흡사한 연출이었다. = 대표적으로 떠올린 장면이다. 사실 그 장면을 찍고 많이 절망했다. 어쩔 수 없구나 싶더라. 여기서 못 벗어나면 다시는 멜로영화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비슷한 건 별로 없지만, 또 찾아보면 은근히 있을 것 같다.

- 둘 사이의 베드신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 원작에는 있다. 명성황후가 무명에게 밥을 한끼 지어주면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장면이다. 맥락상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베드신까지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서 소화를 못하겠더라. 실제 명성황후는 16살에 궁에 들어가 44살에 죽었지만, 영화에서는 3년 정도의 이야기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 안에서 묘사를 하자면 구조를 완전 허물어뜨려야 하는데, 그러다 놓칠 것들이 많았다.

- 무명과 자영의 멜로라인은 무협영화에서 나올 법한 멜로의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자영이 궁에 들어가기 전의 상황이 더 중요한데, 지금보다 직접적이고 감정상 과잉된 에피소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남자가 여자에게 목숨을 걸기에는 차분한 만남이다. = 동의한다. 더 직접적이면서도 감정의 결을 살리는 좋은 에피소드가 있었겠지만, 거기까지는 못 간 것 같다. 이숙연 작가님은 할 만큼 하셨고, 내가 발전시키지 못한 거다.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는 게 솔직한 말일 거다.

- 무명의 곁에는 소희와 대두란 동료가 있다. 대두를 연기한 배우가 궁금했다. <와니와 준하> <분홍신>에도 출연한 배우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가. = 송희연이라고 학교 후배다. 단편 말고는 나온 적이 없을 거다. 우연히 어떤 단편영화에서 봤는데,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감이 강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작은 역이라도 맡겨온 거다. 대두를 맡긴 건 사실 모험이었다. 원래 약간 모자란 남자 캐릭터인데, 나름 연기 잘하는 분들께 부탁해봤더니 너무 전형적인 바보를 연기하더라. 그래서 좀 특이하게 가보려 했다. 기대한 것보다는 잘 살지 못했다. 편집상 그쪽 라인이 많이 죽었다.

- 원래 구상한 러닝타임은 어느 정도였나. = 아무래도 전부 다 살리려면 2시간40분 정도는 되어야 할 거다. 그렇게 해봤는데, 너무 지루하더라. 사실 광화문 전투신에서는 소희가 무명을 구하려다가 죽는 장면도 있었다. 같이 살아온 친구들의 희생을 딛고 한 여자에게 올인한다는 무게감을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결국 캐릭터의 풍부함은 잘 못 살린 것 같다.

- 전작의 장점인 정서적인 디테일을 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 디테일을 강화시키느냐, 약해졌냐는 이번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 같다. 드라마적 구성이 어떤가에 대한 지적이 맞는 게 아닐까? <불꽃나비>에서는 아예 태도가 달라졌다. <와니와 준하>와 <분홍신> 때는 디테일에 집착하다 보니 큰 걸 놓친 게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 물고 늘어지느라 얼마나 지랄을 했는지…. (웃음) 고양이가 밥을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촬영할 때만 해도 스탭들이 이해를 못했다. 드라마랑 아무 상관없는데, 밤새우고 회차를 늘리니까. 이번에는 최대한 큰 그림을 관망하는 태도를 견지하려 했다.

- 다음 작품은 어떨까. 다시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볼 것 같은데. = 그게 내 캐릭터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은 거고, 사실 산만해서 하나만 파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관심 가는 장르는 뮤지컬이다. <불꽃나비>랑 같은 주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 <페임>이 있는 데, 관객의 입장에서 정말 보고 싶다. (웃음) 그리고 서사극에 대한 취향도 있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나 <잉글리쉬 페이션트>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불꽃나비>에도 서사극의 맥락이 있지 않나. 앞으로도 한번 더 해보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 개인적으로는 김용균 감독이 만든 또 다른 멜로영화를 보고 싶다. = 글쎄, 멜로는 자신이 없어지는데…. <와니와 준하>가 멜로였고, <분홍신>에서도 멜로 코드를 강조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 다시 멜로로 복귀한 셈인데, 이상하게 자신이 없어진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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