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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기대작] 2. 더 로드
김용언 2009-09-22

종말에도 살아남은 부성애

"하지만 길을 잃으면 누가 찾아주죠? 누가 그 아이를 찾아요?" "선(善)이 꼬마를 찾을 거야. 언제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하염없이 남쪽을 향해 걷는다. 지구에는 대재앙이 발생했고 문명은 파괴되었으며 사물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보이는 것은 온통 회색 재로 뒤덮여 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색깔이 있는 것,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그는 어린 아들만이 지켜야 할 전부라고 생각한다. 남쪽으로 가는 여행길에는 인간고기를 찾아 헤매는 인간들이 출몰한다.

‘지구 멸망의 날’에 관한 상상력은 대개 선악으로 갈린 두 패거리와 화려한 액션과 ‘그래도 내일은 태양이 뜬다’는 섣부른 희망으로 점철된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 코맥 매카시가 썼고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로드>를 원작으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서 문명 파괴의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죽음과 자멸과 영원한 안식으로의 유혹과 이유도 희망도 없지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갈망 사이에서 제멋대로 투쟁하는 인간들의 초상이 있을 뿐이다. 이 끔찍한 묵시록의 세계에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지켜내는 건 무한한 사랑과 신뢰다. “<로드>가 그토록 보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그 어떤 끔찍한 환경에서도 내 아이를 진심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이야기기 때문이었다. <로드>의 핵심은 결국 러브스토리다.”(비고 모르텐슨)

호주 출신의 낯선 감독 존 힐콧은 무엇보다 리얼리티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는 <매드 맥스>풍의 강렬한 묵시록 클리셰가 아니라, 가능한 한 거칠고 리얼한 ‘지금의’ 풍경을 묘사하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CGI월드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촬영지를 펜실베이니아에서 선택했다. 버려진 탄갱, 바람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모래 언덕, 불타버린 놀이공원과 더이상 이용되지 않는 프리웨이가 곳곳에 널린 펜실베이니아는 세기말 분위기를 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9월2일부터 열린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되기 전 미리 시사회에 참석한 <에스콰이어>와 <가디언>에선 “올해의 가장 중요한 영화”이자 “가슴을 찢어놓는 듯한 파워풀한 작품”이라는 열띤 찬사를 바치기도 했다.

UP 존 힐콧의 절친한 벗인 뮤지션 닉 케이브가 음악을 맡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 샤를리즈 테론이 형편없이 적은 분량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엄마’ 역을 욕심냈다.

DOWN 영화는 언제나 원작 소설과의 비교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감히 코맥 매카시 형의 원작을! 코언 형제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그렇게 어렵사리 성취해낸 것을 낯선 신인감독이 따라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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