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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8mm 필름 다 가져오시오
정재혁 사진 오계옥 2009-09-17

<고갈>의 엔지니어 우병훈 대표

체감 200%의 불쾌함. 시종일관 지글거리는 화면. <고갈>의 이 비주얼을 완성하기 위해 김곡 감독은 유럽 어딘가로 날아가야 했을지 모른다. 만약 이 남자가 없었다면 말이다. 아시아에서 8mm필름을 유일하게 현상할 수 있고, 텔레시네 작업까지 마칠 수 있는 곳. 우병훈씨가 대표로 있는 8mm필름은 김곡 감독의 욕심을 보기좋게 완성해준 곳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해 8mm필름에 탐닉한 게 벌써 6년. 이화여대 근처 사무실에 자리잡고 홀로 8mm 세상에 빠져사는 우병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모든 종류의 8mm필름을 만질 수 있는 남자다.

-<고갈> 작업은 어떻게 제안받았나. =8mm fil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보통은 단편영화하는 학생들이 많이 온다. 대부분 단편영화이고 극중 잠깐 나오는 회상신 등의 작업을 맡긴다. 그런데 김곡 감독은 장편 작업을 제안하더라. 기술적인 스탭, 서포트를 하는 위치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8mm가 가진 특징 같은 거. 가령 8mm필름은 선예도가 좋지 않다. 8mm로는 샤프한 느낌이 잘 나오지 않는다. 16mm만 돼도 꽤 샤프하지 않나. 하지만 클로즈업으로 찍어도 8mm는 부드러운 느낌이 많이 난다. 입자들이 많이 부딪치니까. 나는 그 느낌이 영화의 분위기, 주제와 어울린다고 봤고 그런 것들에 대한 조언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이었나. =가령 사운드 문제. 8mm는 사운드백이 없어서 커버되지 않는 소리 파장이 있다. 야외에서는 어느 정도 괜찮지만 실내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8mm 화면이 위아래로 미세하게 떨리는 현상이 있다. <고갈>에서도 맨 마지막 갯벌장면을 보면 화면이 떨린다. 그게 떨림을 방지하는 장치를 쓰면 조절할 수 있다. 손가락 크기만한 건데 필름 안에 끼운다. 작은 화면에선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큰 화면에선 바로 보인다.

-장편 작업이라 부담도 됐겠다. =부담이 없지 않았다. 일단 학생 작품이 아니고 두 시간 넘는 장편이니 8mm로서는 대작이다. 찍은 분량만 5시간이 넘었고. 현상도 많이 힘들었다. 현상 작업이 기계로 하는 게 아니잖나. 몇천 피트나 되는 필름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져서 해야 하니까. 한롤 작업하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 프레임 하나하나를 사진 파일로 만들고, 그걸 또 컴퓨터로 부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2004년에 8mm필름 사이트를 만들었다. 어떻게 8mm 작업에 빠지게 됐나. =처음엔 영화를 많이 좋아했다. 책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고등학생 때엔 교과서 대신 영화 책 보고. (웃음) 그러다 8mm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외국 사이트에 가보면 많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았고. 나도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16mm는 비싸니까 일단 8mm로 찍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찍은 것도 있다. 사실 비디오든, 8mm든, 16mm든, 35mm든, 그리고 HD든 선택 가능한 포맷 아닌가. 자신이 찍고 싶은 컨셉에 따라 고르는 거다. 그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보를 모으고 현상, 텔레시네 작업까지 가능하게 하려면 힘든 점이 많았겠다. =2004년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8mm필름을 구할 수 없었다. 한국 코닥쪽에서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정식 수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해외의 개인 판매자에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닥쪽에 메일을 보냈다. 주문을 하면 코닥쪽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고. 자체 회의를 하고 메일을 보냈더라. 그래서 이제는 대리점에 문의하면 바로 살 수 있다. 국내 재고는 없지만 선주문식으로 판매한다.

-현상과 텔레시네 작업을 한 건 언제부터인가. =사이트 문 열고 1년쯤 지나서였다. 사실 이전까지 사진 현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책과 인터넷을 보고 직접 찍어서 해보면서 배웠다. 독학이었다. 텔레시네를 시작으로 네거필름 현상, 컬러리버셜, 흑백순으로 배웠다.

-8mm 작업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인가. =많지는 않다. 가끔 뮤직비디오나 CF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 일년에 두세편 정도. 대부분은 연말이나 학기말에 가져오는 졸업작품이나 워크숍 작품이고. 또 가끔은 70, 80년대 찍어놓았던 홈비디오 같은 걸 가지고 오는 분들도 있다. 80년대 이전에는 비디오가 없었으니 필름이 있어도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래서 30년 전에 한번 봤는데요, 하면서 작업을 맡긴다. 결혼식 영상 같은 거.

-해외에서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나. =예전에 일본으로 유학 간 사람이 작업을 맡긴 적은 있다. 일본에서도 네거필름 현상이랑 텔레시네는 안되니까. 한번은 필름을 급하게 구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부탁해 일본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네거필름을 문의하니까 현상 못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더라. 그래서 이쪽에서 할 수 있다고 그랬더니 정말이냐고, 대단하다고. (웃음)

-사실 이제는 대학생도 디지털로 작업하는 게 대세다. 8mm의 어떤 점이 좋아 계속하는 건가. =얼마 전에 극장에서 <무지개 여신>을 보면서 저런 걸 언젠가 해봐야지 생각했었다. 그 영화에 8mm 화면이 나오지 않나. 필름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디지털로 찍은 화면과 달리 차가워 보이지 않는다. 편안한 느낌이다. 값이 싸고 편하기 때문에 한다기보다 결과물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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