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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오리지널의 힘!
장미 2009-09-10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최초 내한공연 9월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의 1588-5212

브래드 그레이트 ★★★★ 올 캐스트 그레이트 ★★★★

브래드 리틀이다. 가창력 없이 승선할 수 없는 대작 <오페라의 유령>에 팬텀 역으로 최장기 출연했다는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다. 바로 그 브래드 리틀을 지킬/하이드로 캐스팅한 <지킬앤하이드> 최초 내한공연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뮤지컬이다. 조승우의 활약과 인기로 극 자체는 한국인에게도 유명하지만 재능을 타고놨으되 조율 역시 탁월한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특히 저음에서 고음으로 능란하게 당겨올린 음성이 넓은 극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듣는 이의 머리끝까지 짜릿하게 타고 오를 때의 희열이란. 춤보다 음악이, 한국어 버전보다 오리지널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뮤지컬 팬이라면 놓치면 아쉬울 공연이다.

1막 80분, 2막 60분, 도합 140분에 이르는 대장정의 시작은 지킬이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인간의 영혼, 선과 악의 문제에 그가 목숨 걸고 도전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본디 과학 혹은 지성의 이중성을 의문의 핵심으로 삼는 텍스트지만 뮤지컬 버전에서 이를 지피고 끓어넘치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는 감정이다. 아버지에 대한, 약혼녀 엠마와 클럽의 무용수 루시에 대한 애정. 지킬의 연인 엠마는 발목조차 보이지 않는 단단한 드레스 차림으로 신뢰를 노래하고, 하이드의 연인인 루시는 붉은 머리를 휘날리면서 열정을 노래한다. 지킬과 하이드가 한몸이듯 엠마와 루시 역시 어쩌면 서로의 얼터에고다. 지킬의 실험을 반대하던 세인트 주디 병원 이사진들을 유희하듯 차례로 살해한 하이드는 루시조차 칼로 긋고, 이들 모두의 운명은 곧 피로 얼룩진다. 선악의 대결구도가 매력적으로 비칠 시대는 한참 지났음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은 대사 한줄 한줄을 의문형보다 감탄형에 가깝게 조탁한다.

캐스팅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이번 공연은 기본적으로 원캐스트다. 모든 출연진이 매 공연 해당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브래드 리틀은 물론이고 숨차는 일정을 함께 소화하는 다른 배우들의 실력도 두말할 나위 없어 보인다. 그중에서도 남다른 배우를 꼽으라면 루시 역의 벨린다 월스톤이다. <물랑루즈>의 니콜 키드먼 뺨치는 자태로 그네를 타고 처음 등장하는 신에선 그야말로 불타는 ‘다이아몬드’ 같다. 오리지널 버전에 미장센을 강화한 새로운 버전으로, 병원에서 펍으로, 어둑선한 거리로, 실험실로 유려하게 탈바꿈하는 무대장치도 훌륭하니 눈여겨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