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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영진위도 한 잔 합시다
주성철 사진 이혜정 2009-09-10

‘채무변제 파티’ 여는 인디포럼 의장 이송희일 감독

인디포럼에서 ‘채무변제 파티’를 연다. 딱히 ‘파티’라는 이름이 어울려 보이지 않는데 하여튼 사정은 이렇다. 지난 14년 동안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온 인디포럼은 지난 2000년을 시작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매년 1500만원 수준의 영화단체사업 지원비를 받아왔는데, 올해는 단체사업 지원 결과 쏙 빠지게 된 것이다. 확고한 심증과 별개로 어쨌건 인디포럼은 당장의 생존방식과 향후계획을 서둘러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채무변제 파티는 바로 그렇게 빚진 걸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십시일반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의 일일호프로 보면 된다. 그깟 빚 때문에 의기소침할 인디포럼이 아니기에 그리고 내년, 내후년 더 잘될 것을 믿기에 이것은 즐거운 ‘파티’다. 물론 보통 사람들의 참여도 가능하다. 기자도 액면가 1만원의 파티 티켓을 무려 2장이나 반강제로 샀다. 인터뷰에 앞서 티켓부터 안겨주는 그런 뻔뻔함을 보니 늘 그래왔듯 인디포럼이 앞으로도 거칠고 끈질기게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다. 파티는 9월12일(토) 오후 6시부터 명동 비어플러스(02-775-4483)에서 열린다.

-일일호프 형식으로 꾸리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방식을 고민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주말이다보니 수익을 7대 3으로 나눠 3을 우리가 가지는 형식이라 사실 돈은 별로 안된다. 하지만 시위 형태의 일일호프로 대외적으로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호부조, 십시일반의 파티다. 배우들도 많이 섭외하려고 했는데 ‘우리 취지에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특유의 ‘귀차니즘’도 있어서 그러진 않았다. 그래도 <똥파리>의 김꽃비는 올 건데 양익준은 지금 포항에서 촬영 중이라 못 온단다. (웃음)

-애초에 지원 대상에서 빠질 거라 예상했나. =당연히 나는 불안했다. 그런데 조영각 형이나 변영주 감독은 ‘설마’ 하면서 걱정 말자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빠진 거 보고 그들한테 따졌다. (웃음) 아무리 궁지에 몰아도 도망갈 쥐구멍 정도는 남겨두는 건데 정말 반신반의했다. 그렇게 당장 지원이 끊기고 나니까 빚이 문제였다. 갑자기 1천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의 지원금이 끊기니까 인쇄비, 사무실 월세, 최소 인건비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빚이 되는 거다.

-내부에서 바라보는, 지원에서 누락된 이유는 뭔가. =물론 평가를 진행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지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더 열심히 하는 거고. 그런데 첫 번째 이유로는 암암리에 도는 소문으로 이른바 ‘촛불과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두 번째 이유로는 그 첫 번째 이유가 설득력을 얻는 건데, 새로 지원을 받게 된 단체들을 보면 정말 정체가 불분명하고 사업이 명확하지 못한 이상한 단체들이 많다. 그런 듣도 보도 못한 단체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금을 펑펑 받으니 정말 열받는 거다.

-단지 즐거운 파티 그 이상의 향후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 =한국독립영화협회가 국정감사 때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인디포럼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여러 다른 단체들도 지원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생겼던 것은 아닌가, 이번 기회에 그런 것들을 좀 총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 자체가 정권과 무관하게 오래도록 싸워서 얻은 것들임에도, 지각변동으로 그게 깨지게 되니까 새로운 방식을 사유할 필요가 생긴 거다. 영진위에도 초청장을 보냈고 당연히 내년에도 지원 신청을 할 거다. (웃음) 물론 충무로 각 영화사들에도 초청장을 뿌렸다. 서울독립영화제나 인디포럼에서 참신한 감독들이나 배우를 쏙쏙 빼내갈 생각만 하지 말고,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자는 거다. 우리가 무너지면 그런 감독이나 배우들을 어디서 찾을 건가.

-<황금시대> 얘기도 좀 하자. 그중에서 <불안>을 연출했는데. =프로젝트의 모티브 자체도 인디 진영에서 출발한 거고, 작품들이 다들 고르게 재밌는 것 같아 기뻤다. 이런 옴니버스영화 보면 보통 폭탄 같은 영화들이 포함돼 있는데 그게 없었다. 다들 한독협, 서독제, 인디포럼에서 개똥밭에 굴러먹던 인간들이라(웃음) 적은 예산으로도 참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고 놀라웠다. 예산 초과로 사비를 더 쓴 사람도 있는 것 같던데 <불안>을 주어진 예산으로 완성했다는 것도 뿌듯하다. 그리고 돈이 나오는 컷을 무조건 각자 에피소드 속에 넣자고 합의를 봤는데 그걸 지킨 감독은 나랑 김은경, 남다정 감독뿐이더라. 다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분위기고. 억울한 게 나는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 인간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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