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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조심조심, 한-미 관계의 미스터리!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09-09-08

실제 사건 영화화한 홍기선 감독 신작 <이태원 살인사건>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홍기선 감독

홍기선 감독의 신작 <이태원 살인사건>은 조심스러운 영화다. 한 남자가 무참히 살해됐고 2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꼽혔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실제 사건이 소재다. 죽은 이들의 가족은 여전히 분노한다. 게다가 영구미제가 아니라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종결된 사건이다. 그러니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살인의 추억을 공공연히 되새길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꽤 잘 아는 사건인 까닭에 더 조심스러울 것이다. 1997년 4월의 어느 날 밤, 그가 이태원의 어디서 살해됐는지, 심지어 지금은 그곳에 무엇이 생겼는지도 알고 있다. 영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화와 영화 사이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상호명과 함께 불리던 이 사건은 흔히 동두천 윤금이씨 살인사건과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 함께 한-미 관계의 갈등을 촉발시킨 3대 사건으로 불린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선택> 등의 전작에서 한국사회의 징후를 도출하던 홍기선 감독이 연출을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조명하는 영화일 거라 생각했다. 혹은 검찰의 관리소홀로 용의자가 미국으로 출국해버린 탓에 수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이 사건에서 허술한 사법체계의 단면을 드러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난 8월23일, 2009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의 장편 경쟁작으로서 첫 상영을 가졌다. 영화는 첨예하게 다뤄질 듯 보였던 사안들을 주변부에 놓았고, 대신 사건발생부터 종결까지의 이야기를 실제 사건순으로 연결짓고 있었다. 세간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결과물이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한 관객은 말했다. “영화를 보고나면 한-미 관계에 대해 분노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한-미 관계나 한국의 사법시스템이나 분노를 이끄는 영화는 아니었다.” 홍기선 감독은 “이 사건은 초동수사에서부터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느낀 문제의식과 기교를 과장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던 홍기선 감독은 이 조심스러운 사건에서 무엇을 본 걸까. 혹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변화가 생긴 건 아닐까.

영화는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시작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실제 사건에서도 중요한 증거였던 모 메이커의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다. 그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남자의 목을 찌른다. 피해자의 이름은 조중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던 대학생이었고 여자친구와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CID(미육군범죄수사대)는 피어슨(장근석)을 검거해 한국 검찰에 넘겨준다. 미군의 조사에서는 자신이 저질렀다고 말한 피어슨은 한국 검찰 앞에서는 혐의를 부정한다. 담당검사인 박대식(정진영)은 목격자를 찾던 도중 알렉스(신승환)를 조사한다. 한편 시신을 조사한 부검의가 살인범이 피해자를 한번에 제압할 정도로 힘이 세고 키가 큰 인물일 거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알렉스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살해현장은 말끔히 청소됐고, 범인은 두명 중 한명이지만 범행을 부인하는데다 목격자의 증언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 <이태원 살인사건>은 두 용의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재현하는 한편, 박대식의 입장에서 느끼는 사건의 혼란스러움을 그려간다.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

홍기선 감독이 1997년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익히 잘 알던 건 아니었다. 지난 2003년 <선택>을 개봉시킨 그는 차기작으로 한-미 관계에 관한 영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장산곶매 시절에 만든 <오! 꿈의 나라>에도 미국을 꿈꾸는 동두천 사람들의 아픔이 그려져 있었듯이 그에게는 오랜 구상이었다. 당시 고려한 실화 중에는 윤금이 살해사건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태원 살인사건의 내역이 담긴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그는 사건이 가진 ‘미묘함’에 먼저 끌렸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관계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징후들이 보였다. 이태원이란 공간, 그리고 그 속의 햄버거 가게,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고 혹은 어느 쪽도 아닌 10대 용의자, 그런 정체성의 혼돈이 빚어낸 비극으로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홍기선 감독은 이태원이 가진 공간성에 더 깊이 몰입했다. 전작에서 가졌던 태도와 연장선상에 있는 대목이다. <가슴에 돋는 칼로…>는 한척의 새우잡이 배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한국의 경제와 권력시스템의 단면을 드러낸 영화였다. <선택>은 세계 최장기수인 김선명 선생이 갇힌 0.75평의 감옥 안에서 이념분쟁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한때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을 영화화하려 했던 것도 70년대의 구로공단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그렇게 찾는 것 같다. 이 사건에서도 이태원이 가진 문화적 혼돈,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영화에서 그런 의미가 얼마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그동안 홍기선은 ‘한국의 켄 로치’로 불려왔다.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인 얄라성, 서울영화집단, 장산곶매 등의 활동을 통해 그는 영화가 억압된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보냈다. 만약 <오! 꿈의 나라>를 만들던 시절의 홍기선, 그리고 <가슴에 돋는 칼로…>를 찍던 시절의 홍기선이었다면 조중필 살인사건이 아닌 윤금이 살인사건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콜라병에 맞아 얼굴이 함몰되어 죽은 한국 여성에게 이입할 수 있는 명확한 아픔이 있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뚜렷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홍기선 감독은 “그때만 해도 사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모든 걸 이분법적으로 보는 성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걸까. “큰 차이는 없지만, 이제는 좀더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는 좀더 그런 면이 필요하다. 적을 단순히 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적도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미묘함들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홍기선이 바라보는 사회의 미묘함은 전작인 <선택>에서도 조금씩은 발견되는 부분이다. 전향을 강요하는 교도소의 폭력적 풍경을 나열하던 와중에도 그는 좌익 전담 반장 오태식에게 공산당한테 아버지를 잃고 다리를 절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말에서나 행동에서나 스스로에게 신념을 강요하는 주인공 대신 단식을 다짐하고도 화장실에서 몰래 빵 봉지를 뜯는 신념의 연약함을 드러낸 것도 같은 변화에서 설명할 만하다.

홍기선 감독에게 가장 큰 고민은 사건이 가진 미묘함의 층위를 어떻게 드러내느냐였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건인데다, 당시 무죄판결을 받은 용의자도 버젓이 살아 있는 상황이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실제 사건이 남긴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아니, 형식보다 이야기를 우선하는 그의 스타일을 이번에도 밀어붙였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물론 실제 사건이 가진 속성상 <이태원 살인사건>은 홍기선의 전작과는 다른 색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살인범의 입장에 이입시키려는 듯한 과감한 살해장면이 묘사되는가 하면, 두 용의자의 진술이 각각의 입장에서 재구성되는 등 영화는 스릴러적인 외양을 띤다. 상업적인 소통을 위한 고민이었을까? 홍기선 감독은 “다소 긴장감을 주려고 했을 뿐 상업적인 연출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태원 살인사건>이 지난 6년 동안 <1/2>이었다가, <거울파편>이 되었다가, 결국 <이태원 살인사건>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 몇몇 영화사에서 영화를 준비하던 홍기선 감독은 사건을 장르적으로 풀어내려는 충무로의 성향을 거부했다. “사건이 가진 현실성이 더 중요했다. 애써 영화적인 미스터리를 담는 게 아니라, 실제 사건이 가진 미스터리를 더욱 현실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사건 자체보다 한국사회가 더 눈길 끄는

결과적으로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금의 관객이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사건이 남긴 여러 쟁점들을 곱씹을 만한 영화가 됐다. 그러나 감독이 처음 생각한 문화적 정체성의 혼돈까지 드러냈는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영화는 미국을 포함한 다국적 문화가 혼재된 이태원의 풍경과 “재미삼아 사람을 죽였다”는 미국계 한국인 용의자의 내면에 깊이 다가서지 못한다. 감독 본인도 “10대 재미동포의 정서를 깊이 파악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는다. 오히려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은 문화적 정체성의 혼돈이 아닌 당시 한국사회의 미묘함과 그로 인한 아이러니다. 한-미 관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지만, 사실상 미국이 전례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건이라는 점, 100%의 증거로 유죄를 확정시키려는 사법부의 민주적인 노력이 결국 영구미제 사건을 만들어버린 점 등이다. 분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이태원 살인사건>이 묘사한 사건의 본질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드라마적인 해결 대신 피로 범벅된 한 남자의 시신만을 남긴다. 실제 사건이 그랬듯 허무함만 남는 결론이다. 대신 영화는 실제 사건이 남긴 망연자실한 표정을 극중 박대식 검사의 얼굴에 새겨놓는다. 정진영이 연기하는 박대식은 끊임없는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검사다. 그는 미국의 수사 결과를 뒤집고 알렉스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히지만, 이내 곧 속내를 알 수 없는 피어슨의 태도에 혼란을 느낀다. 물총 장난을 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사건현장을 재현해보는 장면은 위트이자, 그의 초조한 심정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사건의 미묘함과 허무함을 목격하는 한편, 피해자의 영혼을 불러와 재차 묻는 그가 고민하는 것은 이처럼 어떤 노력도 무력화하는 사회에서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란 질문이다. 이것은 또한 홍기선 감독의 질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는 사건이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껴안아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완이 남긴 허무. 끝내 진범을 확신하지 못한 박대식 검사의 표정은 자유를 향한 의지를 폭풍에 꺾여야 했던 <가슴에 돋는 칼로…>의 재호와 닮아 있다. 홍기선 감독의 관심사는 변했을지 몰라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은 듯 보인다. 또한 그가 바라보는 세상도 변하지 않았다. “근본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정권뿐만 아니라 전 정권 때도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비관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흘러간다고 볼 뿐이다.” 자신의 영화적 욕구를 발견하는 태도도 달라진 게 없다. “사회가 발전하든 안 하든 소외받고 가슴아파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사회적 불평등에 상처받은 사람과 정치적 부자유에서 신념을 찾으려던 사람을 그린 홍기선은 이제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적 시스템에서 구명받지 못한 인간을 그렸다. <이태원 살인사건>이 홍기선의 영화적 성취를 확인하는 작품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허나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품이 한뼘 더 넓어졌다고는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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