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모 브랜드에서 나온 환경백 샘플이니 하나씩 챙기세요.” 드라마 <스타일>의 한 장면. 패션잡지 기자들이 판매가 29만원의 가방을 ‘샘플’로 나눠 받고 있다.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TV를 보는데 엄마의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넌 회사로 뭐 안 오냐? 난 영화기자면 영화는 다 공짜로 보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뭐가 없긴 정말 없구나 싶다. 영화잡지 기자의 생활 사이클은 물욕의 삶과 정말이지 거리가 멀다. 상영작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국 멀티플렉스 극장 프리 패스 이용권…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언론 시사회 또한 명함을 내고 입장하지만 특정 날짜에 참석하지 못하면 주말에 돈을 내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러니 엄마 입장에서는 ‘샘플 백’을 받는 드라마 속 에디터와 시사회를 놓쳤다며 주말마다 영화표를 꼬박꼬박 사는 딸내미 사이의 거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그렇다고 물욕의 즐거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씨네21>에 입사한 뒤 ‘한번에 책 왕창 사들이기’라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이게 다 몇 개월에 한번씩 열리는 사내 도서 할인 행사 때문이다. 보도용 책들이 넘쳐 더이상 꽂을 자리가 없게 되면 <씨네21>에선 사원들에게 일부 책들을 90% 이상 할인이라는 아찔한 가격에 판매한다. 행사 기간 동안 자료실은 만원 가까이 되는 이언 매큐언의 책이 천원에 판매되는 신천지로 변한다. 재빨리 골라야 하지만 폴 오스터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인기 작가의 신간도 종종 눈에 보인다. 내 경우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단품으로 한권씩 구입하다 보니 어느덧 가격이 부담스러워 구입하지 못했던 전집을 다 모으게 되었다. 행사날마다 수십권의 책 사냥을 마치고 포획물을 바라보는 기분은 얼마나 뿌듯한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심리적으로 포만감이 드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마* 제이콥스 샘플 백이나 슈*무라 클렌징 오일은 필요없어, 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입고 바르는 즐거움과 보고 느끼는 즐거움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문제니까. 다만 사재기한 책들이 만들어내는 내 책상 위의 아름다운 비선형 곡선을 바라보노라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위대한(!) 기쁨인가, 라는 원초적인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래서 물욕을 ‘원초적 본능’이라 부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