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이A>. 햇빛이 잘 드는 면회실에 청년과 노인이 마주보고 앉았다. “기분이 어때?”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청년은 10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곧 석방을 앞두고 있다. 노인은 그의 보호감찰관이다. “ 이 가방 안에 뭐가 들었을 것 같아?” 노인이 건넨 녹색 비닐 봉투를 열자 그 안에서 나이키 운동화 상자가 나온다. ‘사이즈 10’ 스티커가 붙은 상자를 열었더니 갈색과 밤색이 섞인 나이키 운동화가 들었다. 끈과 스워시는 검정색이고 뒤축에는 빨강 나이키 로고가 있다. 이스케이프란 모델명을 가진 운동화를 받아들고 청년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다. 노인은 “ 이럴 땐 고맙다고 하면 돼” 하고는 안아준다.
살인사건으로 기소되어 언론에서는 줄곧 ‘소년A’로 불렸던 열살짜리가 스물네살 ‘잭’이 되는 순간이다. 선물받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잭은 은행 계좌도 만들고 직장도 얻고 맥도널드에도 간다. 식당 메뉴판을 보면 파니니와 멕시칸 치킨이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여자를 안아도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한 ‘어리둥절한 사회생활’이지만 잭은 방금 칭찬을 들은 소년처럼 무구한 얼굴로 뭐든 열심이다.
노란색 피케와 남색 나일론 점퍼 차림에도, 난생 첫 데이트를 위해 새 셔츠를 입을 때도 잭은 늘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 나이키 운동화는 잭에게 그 자신을 살인범 ‘소년A’가 아닌 맥주와 스포츠를 좋아하는 보통 청년이라고 여기게 하는 용기를 준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은 잭에게 직장의 매니저는 “수감생활을 좀 했다고 들었네. 괜찮아.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도 사생활에 대한 권리는 있는 거야. 즉 말하고 싶은 건 세컨드 찬스지”라고 말하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물론, 잭이 ‘소년A’인지는 몰랐을 때 얘기다. 아무도 그걸 몰랐을 때 잭은 나이키의 스워시처럼 번쩍하고 날아가는 행복을 아주 잠깐 맛본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소년A’란 이름을 잊었다. 결국 그들이 말했던 두 번째 기회란 게 그래서 잭에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