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서른 중반은 몹시 음란해지는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아 한숨은 더없이 메마르기만 한데도.
간밤은 유독 리얼했다. 일을 통해 만난 A씨에게는 매력을 느끼지만 피차간 조심해야 하는 입장. 그날 평소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달리 그는 일이 엉킨 것에 대해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괜찮다며 어쭙잖게 그를 위로했는데 그게 확 와닿았는지 돌연 내게 깊은 키스를 했다. 캔커피와 담배 맛이 났다.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에 우린 입술과 몸을 뗐지만 난 그의 두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쳐다봤다간 그대로 돌덩어리가 되거나 잡아먹힐 것 같았으니깐. 그날 대체 하루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결국 퇴근할 때 책 빌릴 게 있다며 우리 집까지 따라왔다. 슬프게도 우린 더이상 입맞춤에서 멈출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니까. 아무 말 없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내렸다. 귓볼로 느껴지는 그의 숨소리에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나의 손가락이 부르르 떨렸다….
물론 많은 여자들이 몰래 외간남자에 대한 말 못할 꿈을 꿀 것이다. 예전 남자친구가 나타나 다시 피곤하게 구애한다거나, 브래드 피트랑 영어로 사랑을 속삭인다든가, 옆집 아저씨가 남편 출장간 틈에 나를 덮쳤다거나 등등. 한데 내 꿈은 여느 에로판타지개꿈에 비해 조금 더 실질적이다. 첫째, 상황전개가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점. 까놓고 말해 현실에서도 작정하고 덤비면 뭐 완전히 불가능하지도 않을 시추에이션… 뷁. 둘째, 등장하는 모든 남자가 일로 만난 공적 관계의 남자라는 점. 사실 그래서 더 스릴만점. 셋째, 공적 관계라도 성적 긴장감을 단 1%라도 지녔던 남자라는 점. 마지막으로 저마다 특장점을 살린 차별화된 ‘컨셉’이 있다는 점이다.
단골로 고정 출연하는 B씨와 나의 무대는 늘 비싼 이탈리아산 가죽소파 냄새가 나는 그의 사무실.난 왠지 그에겐 항상 고민상담을 하고 있다. 그는 주저리주저리 영어를 잔뜩 섞어가며 조언을 하긴 하는데 어어어 정신차려보면 어느새 난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그의 목덜미 뒤 애프터셰이브 냄새를 맡고 있다. 문밖 비서들이 못 들여다보도록 미묘한 각도로 포개져 있는 게 이거 완전 DVD방의 스릴이다. 한 시기 반짝, 맹렬히 출연했던 C씨는 나왔다 하면 무조건 ‘대놓고 달라’ 스타일이라 도리어 그를 여유롭게 애태울 수 있었다. 막판에 허함으로써 맹수처럼 달려드는 그 땀내나는 수컷성을 탐닉하기 위해. 반대로 D씨는 줄 듯 말 듯 안 주는 아주 못되고 이상한 남자였는데 그와는 늘 섬세한 신경전을 벌이기에 깨고 나면 가슴이 여전히 벌렁벌렁, 손엔 힘조차 남지 않을 만큼 곤죽이 되어 있다.
퍼뜩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고 두살배기 딸의 아침상을 차려주진 못할망정 꿈에서 깨어나도 몸으로 그 여운을 맛보려는 나 자신의 탐욕에 구역질이 날 무렵, 하아, 나 좀 정신적 문제 있나 싶어 전문적으로 꿈풀이를 해봤더니 이 꿈들은 성적 욕구불만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암시하는 거란다. 왜냐, ABCD씨 모두가 공히 각자 영역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임경선 2030세대의 일과 사랑에 대한 칼럼과 책을 써가며 딸 윤서를 거칠게 키우고 있다. ‘캣우먼’이라는 별칭으로 라디오에서 인생상담도 하며 지금은 첫 연애소설을 쓴다. 최근작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