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 바꾸어 말하면 ‘착하게 살자’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착하게 살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는 게 더 효과적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인간 없는 세상>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이 책은 그저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면 어떤 일들이 생길지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1년이 지나면 고압전선에 감전돼 죽던 새 10억 마리가 목숨을 건진다. 3만5천년쯤 지나면 토양 오염의 주범인 납이 씻겨나가고, 10만년 뒤엔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인간이 없는 지구는 좀더 원시적이지만 더 착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이 오싹한 가상의 진실은 인간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려면 결국 더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걸 느끼고 행동하는 게 바로 독자의 몫일 테다.
보여주기의 힘은 패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현재 전세계를 강타한 ‘패스트 패션’의 저렴한 가격 뒤에는 꼬마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임금 문제가 있다고, 그 옷을 만드는 데 치명적인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아무리 말해봐도 사람들은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가 에코백의 원조가 된 ‘I’m Not A Plastic Bag’을 만들고, 그걸 스칼렛 요한슨이나 키라 나이틀리가 들자마자 여성들이 움직였다.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자신의 옷에 탄소 중립을 뜻하는 ‘Carbon Neutral’이라는 슬로건을 박아 넣자 사람들은 비로소 탄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람들의 ‘본보기’는 대중을 더 착한 삶으로 유도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경기도 미술관에서 <패션의 윤리학: 착하게 입자>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을 포함해 7개국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이 ‘윤리적 패션’을 주제로 만든 옷을 공개했다. 음료수 캔 뚜껑으로 만든 숄더백과 신문지로 만든 오튀쿠튀르 드레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새햐안 웨딩드레스가 거기에 있었다. 윤리고 뭐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예뻐서 소장하고 싶다는 거였다. 윤리적인데다 예쁜 옷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착한 생각은 아마 저절로 따라붙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