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다양성 지수 ★★★★ 고정관념 지수 ★
사진은 본질적으로 기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사진의 탄생을 부추겼고, 인간은 작은 프레임 안에 순간을 봉인함으로써 그 욕망을 기어이 채웠다. 그러다보니 사진은 본의 아니게 시대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예술 장르가 되었다. 한국의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진실과 정의가 절실했던 1980년대 한국에선 보도·다큐멘터리 사진이 선전했다. 2009년의 한국 사진작가들은 세계화, 개인주의, 디지털화라는 현재의 키워드를 의식한 듯 나라 밖으로, 개인의 내부로, 가상현실로 무수한 가지치기를 시도한다. 그렇다면 사진이라는 현실의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여 시대의 큰 그림을 유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포토코리아 2009 <슈팅 이미지 Shooting Image> 사진전은 한국 사진의 지난 10년을 되짚어보는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예술총감독 전승보씨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한국 사진계가 맞이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졌고 둘째, 사진의 범주가 디지털과 웹 등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셋째, 미술시장이 사진을 끌어안으면서 작가주의가 더욱 진전됐다. 이번 사진전에 참여한 51명의 한국 작가들은 400여점의 작품으로 이 변화를 몸소 증명한다.
먼저 본 전시와 더불어 열리는 <아시아, 대륙의 꿈>이라는 특별전에 참여하는 서강대학교 손호철 교수와 황지우 시인은 잘 알려진 대로 사진작가가 아니라 정치학자와 인문학자다. 사진가보다는 대중에 가까울 이들은 중국의 대장정(손호철)과 몽골의 사막(황지우) 풍경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왔다. 양아치 작가는 아예 웹상으로 데뷔한 경우다. 활동 초기에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고 해킹도 배웠다고 한다. 그런 그가 내놓은 작품은 디지털 시대의 국가, 정부, 경제에 반기를 드는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 2>. 과연 21세기의 사진작가답다. 김준, 김옥선, 정동석 작가의 사진은 얼핏 봐서는 사진인지 미술작품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평범한 사물에 석고를 입히고, 명암의 색깔을 덧칠한 뒤 셔터를 누르는 유현미 작가의 작품은 조각, 회화, 사진의 경계를 트는 크로스 작업이다. 이처럼 다양하게 진화하는 사진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시대는 암울해도 예술에는 희망이 있구나 싶다. 한마디로 “즐거운 중구난방”(전승보)이라고 할까. 한편 본 전시의 ‘사람-익명의 모습’ 코너에서는 <씨네21>에 ‘사진의 털’을 연재하는 노순택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