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댄스는 젊음의 춤이다. 그 잽싼 발놀림을, 관록만으로 따라가기는 불가능하다. 탭탭탭 소리가 심장 박동과 같은 박자를 이루고, 아찔한 스피드에 댄서들의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어간다. 군무에서 독무로, 다시 군무로. 늘씬한 아가씨들의 다리가 군복을 입은 남자들의 그것과 아무렇지 않게 뒤엉킨다. 절정의 순간을 넘긴 도로시 브록이, 새파랗게 젊은 페기 소여를 이기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가장 큰 무기는 페기 소여의 ‘춤추는 다리’, 탭댄스다. 징 달린 슈즈가 바닥에 부딪혀 내는 소리에 관객은 숨 쉬기를 잊고,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스텝에 힘입어 펜실베이니아 출신 시골 소녀의 성공담은 현실이 된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뮤지컬 연출가 줄리안 마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옥주현, 박상원, 김법래, 박해미, 이정화, 임혜영, 박동하 등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번 한국어 공연은 지난해 내한한 브로드웨이팀의 그것보다 드라마틱하다. 관객의 반응이 유난히 적었던 지난해 공연과 확실히 대조적이다. 화려한 댄스신과 탄탄한 뮤지컬 넘버, 1930년대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로맨틱한 의상, 육감적인 몸매의 댄서들, 그녀들을 희롱하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까지.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대형 쇼가 지녀야 할 거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춘 뮤지컬이다. 코러스걸이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은 꿈결 같고, 도로시 브록과 매기 존슨의 유머, 페기 소여의 솔로 탭댄스는 적재적소에서 작렬한다.
1년여 사이 비보로 얼룩진 뉴스면이 취향마저 바꿨을까. 두 번째로 관람하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러나 이상하게 씁쓸한 맛을 남겼다. 자존심 강한 도로시 브록이 풋내기 페기 소여를 질투하고, 냉정하기만 한 줄리안 마쉬가 그녀의 천진한 미소에 넋을 잃을 때, 아니, 잔혹한 쇼비즈니스의 생리가 순진할 정도로 낙관적인 세계관 위에 피처럼 배어나올 때. 여배우는 무대를 떠나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취할 만큼 달콤한 이 성공담을, 하필이면 193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만든 저의는 뭘까. 영국 프로덕션이 제작한 리바이벌 공연을 선보인 브로드웨이팀과 달리 1980년의 오리지널 클래식 버전을 무대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