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한다. 글에서. 아무나 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란 무릇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유있는 미소를 되돌려줄 인격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그 상태 그대로 재빨리 동결건조시킨 다음 마음 한구석에 꾹꾹 눌러 담아야 한다. 그리고 화난 표정 대신 여유로운 미소, 온화한 한마디를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분노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데.
하지만 아직 인격 수양이 부족한 탓에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소중한 재료들을 날려먹는다. 사실 나는 그다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욱하는 일이 꽤 많다. 그러다보니 분노를 충분히 축적할 수가 없다. 웬만큼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든 사람이 아니라면 나에게 싫은 소리를 좀 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보통은 그 자리에서 화 한번 내고 휘발시켜버리니까.
그러니 안심하시라. 내가 아무나 글로 욕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욕을 한다 해도 본인은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를 만큼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말하자면 내 욕은 꿈같은 것이다. 무의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지만 그걸 그대로 전달하면 나 역시 언젠가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왜곡에 왜곡을 거듭한 뒤에야 비로소 그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아주 직설적으로 상대를 욕하는 경우가 있다.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명확해서 전혀 왜곡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와도 내 “순수한” 자아가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을 만큼 어이없는 상대에 한해서 가끔 그런 일이 발생한다. ‘이 정도면 알아보는 거 아니야?’ 스스로 그런 걱정이 들 만큼 노골적인 표현들이 글 곳곳에 숨어 들어가고, 어떤 때는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비꼬는 말들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알아볼까? 역시 못 알아보겠지?’ 나의 길티 플레저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아, 이건 너무 심하잖아. 꺄하하하하.’
그런데 요즘 이 일이 원래보다 더 재미있어졌다. 요즘처럼 글을 쓰는 행위가 어떤 특정한(그러나 실제로는 꽤 일반적인) 조건하에서 진짜로 법적인 의미의 “guilty”가 될 수도 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는, 이 일이야말로 진짜 길티 플레저니까.
‘그래. 누군가가 알아보는 거야. 아니 감히 그분을 욕하다니! 그러면 나는 곧 반정부 작가로 낙인찍히겠지. 잘하면 군대에서 세례받듯 속성으로, 사회주의 이론서 하나 안 읽고 좌파 작가가 될지도 몰라. 물론 내가 내 글에서 그분이 그분이라고 적시한 적은 없으니 명예훼손 같은 건 성립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뭐든 먼지를 털겠지.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 덕에 나도 유명해질지도 몰라. 누가 나 좀 조사해 주세요!’ 두근두근.
그러나 나의 필승 시나리오는 좀처럼 현실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날카로운 풍자, 세련된 유머, 그냥 웃기는 데서 끝내지 않는 씁쓸한 뒷맛까지 두루 갖추었다는 자평에도 그들은 내 소설에 관심이 없다. 당연하지. 그 바쁜 양반들이 소설 따위나 읽고 있을 시간이 있을 리가 없지. 지금도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작품들을 쏟아내시니. 덕분에 아직은 “not guilty”다. 그런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하나?
배명훈 소설가. 2005년부터 <판타스틱> 등 다양한 매체에 단편을 발표하며 활동해 왔으며, 올해 6월에 674층 초고층빌딩을 다룬 연작소설 <타워>를 출간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