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아직 학생이었던 나의 밤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엄숙하고 지루한 작업으로 바빴다. 지금이라면 원고가 막힐 땐 맥주캔을 땄겠지만, 그땐 커피 한잔도 마시면 안될 것 같았다. 자기소개서 쓰기는 그렇게 고된 일이었다. 졸업을 앞둔 10월, 과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가 유유히 첫 면접에 합격하며 내 곁을 떠났다. 악순환은 되풀이됐다. 친구들은 순서라도 나눠가진 것처럼 떠나갔고, 남겨진 나는 매일 밤 울면서 자기소개서에 매진했다. 누구든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씨네21>은 두 번째 직장이었다. 첫 직장에 신물을 느끼던 나는 때마침 연락이 온 <씨네21>에 입사를 결정했고, 그뒤 3년3개월 동안 160번의 마감을 했다. 이제 와 되돌아본다. 나의 초심은 그대로인가.
2년 전, 자료실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희귀문서’를 발견했다. <씨네21>의 기자들이 입사 지원할 때 제출했던 자기소개서 뭉치를 찾아낸 것이다. K, L, P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그들이 어렸던 시절에 써내려간 ‘첫 마음’을 만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마이갓! 역시 그들은 될 성 부른 나무의 떡잎들이었다. <씨네21>에서 배움을 찾고 싶다는 K선배의 견고한 글을 보니, 나의 허랑한 자기소개서를 되찾아 구겨버리고 싶어졌다. 그뿐 아니다. L선배가 스스로를 타자화해 작성한 기사체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괜히 숙연해졌고, P선배의 발랄한 글에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들의 젊은 날은 지금의 나라도 쫓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위안을 찾았다. 나는 아직 노력할 부분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기보다는 뒤따르고 싶어 하는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세 선배들은 물론 다른 선배들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단 생각에 안심이 된다. 성취할 부분이 남은 것은 배움의 가능성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 않나. 2006년 5월2일 <씨네21>에서의 첫날이 기억난다. 그날 나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자기비하와 이질감에 시달렸다. 첫 마감날에는 저녁으로 주문한 피자 한 조각을 먹지 못해 배를 곯았던 기억도 있다. 이제사 뻘줌함 좀 덜어내고 사람 구실하며 일하게 됐는데, 익숙해지기 무섭게 정든 곳과 정든 이들을 떠나게 됐다. 뭐라고 해야 진심이 전해질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러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