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c Soth, Terrace Court, Chromogenic print, 2005 ⓒ Alec Soth. Courtesy Gagosian Gallery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왁스를 칠한 마루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으며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시인 폴 엘뤼아르의 말이다. 그는 미화된 언어나 아름답게 포장된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들은 진실이 아니며, 진실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쓰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뤼아르의 생각을 예술 장르에 적용하면, 가장 ‘진실’된 장르는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다큐멘터리는 포장이나 수식을 악덕으로 여기며,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장르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날것의 진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때때로 불편함과 혐오감을 자아낸다. 그래서일까.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사람과 픽션·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극명하게 갈린다. 이 둘은 섞일 수 없는 기름 같다. 다큐멘터리 옹호자는 드라마 옹호자를 ‘현실 도피자’ 운운하며 비판하고, 드라마 옹호자는 ‘현실도 암울한 판에 굳이 보는 것까지 암울해야겠냐’며 다큐멘터리의 불편함을 지적한다.
사진가 알렉 소스의 작품이 주목받는 건 그의 사진이 진실과 아름다움, 그 중간 어디쯤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알렉 소스는 최근 박찬욱 감독이 <박쥐>의 촬영에 그의 작품을 참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작가다.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는 그의 사진은 이상하게도 아름답다. 시골에 내팽개쳐진 낡은 의자도 아름답고, 잡지를 쟁반 삼아 덩그러니 놓인 포도 송이도 아름답다. 물과 기름 같던 진실과 아름다움은 소스의 작품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든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듯하다. 진실이 아름답다는 것은 과연 형용 모순일까? 똑같은 질문을 알렉 소스에게 직접 던진 평론가가 있었다. 그 질문에 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단지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심오한 미는 바로 현실 속에 뿌리를 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원동력은 사진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알렉 소스가 바라보는 세상은, 진실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