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이미 <해운대>로만 윤제균 감독과 2번의 인터뷰를 가졌다. 촬영 전에 한번, 촬영 뒤에 또 한번. 게다가 그가 쓴 작업일지도 실었다. 그런데도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스스로 “언론과 비평의 대척점에 있던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라고 말하는 윤제균 감독에게도 생경한 풍경일 것이다. “한 작품을 가지고 이렇게 2, 3번 나눠서 인터뷰한 건 처음이라 얼떨떨하다. 내가 워낙 <씨네21>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어서…. (웃음)” 정확히 말하면, 윤제균 감독의 영화 중에서 <해운대>가 가장 생경한 작품인 까닭이다. 전작인 <1번가의 기적>에서 변화를 꾀했던 그는 <해운대>를 통해 그때의 변화가 잠깐의 외출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했다. 이전의 인터뷰가 화제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던 CG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영화 속 세계에 대해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쌈마이 코미디 감독’으로 불리던 그는 어떻게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받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걸까.
- <1번가의 기적> 때보다 반응이 좋은 것 같다. = 익숙하지가 않다. (웃음) 그때도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사실 윤제균이 변했다는 정도였다. 이번에는 나름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개봉 전에 안 좋은 기사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반신반의했다. 나와 기자들의 생각은 항상 달랐으니까. (웃음)
- 소문 중에는 CG와 관련된 우려가 가장 많았다. = 속이 상했다. 보고나서 이야기하면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아무도 본 적이 없을 때 그런 기사들이 나왔으니까. 재난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재난이라는 말이 많았다. 악플 중에는 “쌈마이 코미디 감독인 너는 이제 영화 만들지 마라”는 것도 있었다. 상처가 많았다. 난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데….
- CG가 아니라 이야기에 대해서 묻고 싶다. <1번가의 기적>과 비슷한 설정이 있지만, 인연의 기묘함이 두드러졌다. = 재난영화를 가지고 어떤 주제를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웹서핑을 하다가 글을 하나 보게 됐다. 피천득 선생의 글인데, “인생이란 작은 인연과 오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가볍게 봤지만, 가슴에 꽂히더라. 인생이란 게 수많은 인연으로 엮이지 않나. 나에게도 좋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악연도 있다. 하지만 자연재해 앞에서는 작은 오해나 악연도 모두 무색해진다. 적을 만들지 말고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죽일 듯이 싫어한 사람도 자기를 구해줄 수 있고, 또 싫어한 사람을 자신이 구할 수도 있으니까. 사실 최종편집에는 빠져 있는데, 영화 시작 전에 피천득 선생의 이 문장을 넣기도 했었다. 너무 직접적이라서 뺀 거지.
- 본인 스스로 “영화 바깥에서 영화 일을 시작해서 볼거리가 약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해운대>는 가장 많은 볼거리를 가진 작품이다. 단지 거대한 쓰나미 때문이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쓰나미의 조짐으로 갈매기가 차 앞유리에 머리를 박고 죽는 장면이라든지 광안대교에서 컨테이너들이 떨어지는 장면이 그랬다. = 규모로 할리우드랑 맞붙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디어밖에 없었다. 광안대교 장면이라든지, 변압기 시퀀스 등 돈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그만큼의 효과를 낼 장면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시나리오작가, 콘티작가, 촬영감독 등등이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핵심은 예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을 만들자는 거였다. 컨테이너 박스가 미사일처럼 건물에 박히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지하철 역사가 물에 휩쓸리는 장면도 콘티에 있었다. 그런데 <노잉>에 나왔다기에 뺐다. 그들보다 뛰어나게 만들지 못하는 이상 임팩트가 없으니까.
- 쓰나미가 진행된 뒤에 벌어지는 2차적인 재난에 대한 아이디어가 관건이었겠다. = 맞다. 변압기 시퀀스는 장마 때 감전사로 죽은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는 사실에 기인한 거다. 호텔방에서 물이 빠지면서 아이가 밖으로 떨어지는 장면도 재난영화에서 못 본 것 같아서 넣었다. 컨테이너 장면은 사실 더 재밌게 갔다. 컨테이너가 박히는 건물이 호텔이다. 그때 안에서 반라의 남녀가 피하다가 박스와 바짝 붙게 되는 장면이 있다. 여자가 뭔가 해서 고개를 내밀 때, 두 번째 콘테이너 박스가 날아와 변을 당하는 거지. 다 찍었는데, 너무 장난스럽다고 해서 뺐다.
- 사실 아쿠아리움 장면을 보면서 또 다른 시퀀스가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수족관에서 빠져나온 상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지…. = 그 장면도 있었다. 실제 찍었다. 화장실에 가는 희미의 친구가 물을 헤치고 나오는데, 상어한테 물리는 장면이다. 역시 너무 웃기다고 해서 뺐다. 그런가 하면 건물 앞에 빽빽이 모여 있던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면도 있었는데, 같은 이유로 삭제했다. 전체적으로 10분 정도를 자른 것 같다. 다 코믹스러운 장면이다. 재난의 긴장이 몰아쳐야 하는데,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아서…. (웃음) 나중에 DVD에는 다 넣을 거다.
- 컨테이너 장면에서 분업화의 과정을 그려봤다. 아마도 컨테이너 박스를 떨어뜨리자는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이 낸 것 같고, 거기에 감독은 박스들 사이를 피해다니는 동춘의 모습을 추가한 게 아닌가 싶더라. =그런 건 맞다.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일단 내가 전문가가 아니지 않나. 나 혼자 밀어붙이는 건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다. 연출을 할 때도 CG장면에서는 장성호 대표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미국 촬영에서도 한스 울릭에게 메가폰을 주기도 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영화가 잘 나오는 거니까. 감독은 마스터가 아니다. 디렉터지. 방향을 제시하는 게 감독의 일이다. 다른 감독님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서는 따로 감독을 붙일 생각이다.
-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도, 코미디영화를 만들다가 재난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는 스스로 겁이 났을 것 같다. = 도전에 대해서는 겁이 나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코미디 감독이 재난영화를 연출하는 것보다는 샐러리맨이 영화감독한다는 게 더 큰 도전 아닌가. 영화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막내 스탭에게까지 물어보면서 일하면 못할 것이 없다.
- 완성 뒤에 뭉클했던 장면이 있나. 드라마적으로 뭉클한 게 아니라, 완성이 실감났던 장면 말이다. = 모두 맨땅에 헤딩하면서 만든 거라…. (웃음) 아, 만식과 연희가 시장통에서 도망치는 장면이 눈물이 나더라. 사실 세트로 만들고 찍어야 했는데, 세트가 아니었다. 세로 100m, 가로 10m, 높이 1m 정도의 이동식 풀장을 시장에 설치해서 찍은 거다. 그래서 진짜 애를 많이 먹었다. 풀장을 설치하는 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 시장을 섭외하는 문제가 더 컸나. = 장사를 해야 하니까. 추석 때 찍었는 데, 내줄 수 있는 시간이 오전뿐이라더라. 전날 밤 12시부터 준비해서 풀장을 설치하고, 소방차 불러서 물을 넣었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풀장을 깔아놓고 보니까 땅이 경사가 져 있었다. 물이 한쪽은 가득 차는데, 다른 쪽은 전혀 차지를 않았다. 그때가 새벽 6시였다. 앞이 캄캄했다. 그날 촬영을 못하면 그냥 없어지는 장면이니까. 게다가 엑스트라는 300명 정도 불러놨고, 일부러 비싼 차들 불러서 뒤집어놨다. 못 찍으면 몇 억원 날리는 거다. 심지어 내 차가 SM7인데 그것도 물속에 집어넣었다. “윤제균, 이 자식아, 너가 그냥 코미디나 하지 미쳤다고 재난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런 후회가 들더라. (웃음) 그때 순간적으로 생각한 게 ‘둑’이었다. 군데군데 둑을 쌓으면 물이 찰 테니까. 그래서 스탭들이며 배우 매니저들이며 다 해운대 백사장에 달려가서 모래를 퍼왔다. 경구 형이랑 지원이도 둑을 쌓았다. 그때가 8시였다. 이제 촬영하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경찰이 오더라고. 어떤 주민이 모래를 퍼갔다고 신고한 거다. 결국 다 설득해서 스탠바이 완료한 게 9시였다. 뒷정리를 하려면 11시까지는 끝내야 했다. 2시간 동안 카메라 3대를 막 돌려서 40컷을 찍었다.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는데, 경구 형이나 지원이나 다들 눈물겨워하더라. 눈물이 나면서도 되게 많이 웃었다.
- <해운대>의 야심은 일단 쓰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산을 보여주고자 하는 야심이 가장 큰 영화다. 제목으로 ‘해운대’를 내건 것도 그렇고. = 내가 부산 촌놈인데, 촌놈들의 특징이 회귀본능이다. (웃음) 영화를 처음 할 때부터 언젠가는 부산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곽경택 감독이 정말 부러웠다니까. 제목은 바꾸자는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빅 웨이브, 대파도…. 이런 게 있었다. 난 죽어도 못 바꾸겠다고 했다. 해외판매도 다 <해운대>로 나갔다. 이 영화를 통해 해운대가 세계 속의 해운대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 롯데의 경기가 있는 사직구장이 나올 때는 집요하게 느껴지더라. = 1차 편집에서는 분량이 두배였다. 내가 구장 옆에 있는 사직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7회말부터는 공짜 입장이었다. 3년 내내 다녔으니 나보다 사직구장의 분위기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거다. 최근에는 홈런볼 때문에 난투극이 벌어지지 않았나. 하하, 그게 부산이라니까. (웃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심각하게 보겠지만, 사실 부산 사람들은 그런 거 봐도 웃는다. 촬영 때도 극중에서 추태를 부리는 만식이랑 똑같은 아저씨가 있었다. 롯데 팬들이 보면 더 웃길 거다.
- 부산 사나이의 매력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이민기가 연기한 형식은 <해운대>에서 가장 영화적인 인물이다. 의외였던 건 형식이 죽는 장면에서 과잉된 연출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전작이었다면 더 눈물을 쏙 빼는 연출이 있었을 텐데. = 시나리오를 모니터링한 여성들은 형식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안에서는 살릴 수가 없었다. 원래는 그 장면이 더 길었다. 말한 대로 더 울리는 장면이었지. 그런데 편집을 하다보니 울리는 게 정말 싫었다. 이제는 넘치는 것보다는 모자란 게 좋게 느껴진다.
- 취향이 많이 변한 것 같다. <두사부일체>나 <색즉시공>처럼 세게 지르는 것도 없다. = 아이를 놓고 나서 특히 많이 변했다. 30대 초반에는 대놓고 ‘그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다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이유가 있었겠지 싶다. 사람이 좀 닳았다고 해야 하나, 세파에 찌들렸다고 해야 하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게 강해진 것 같다.
- 취향이 사라지지 않고 순화된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윤제균 감독의 전작들이 쥐약과 정액의 영화였다면, <해운대>는 샴푸의 영화라는 식으로 분류하고 싶다. 이상한 것을 먹고 병원에 실려가는 건 똑같지만,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 하하하. 순화되기는 한 거지. <색즉시공>의 쥐약 에피소드처럼 이번 이야기도 내 친구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그런 일화들을 영화에 대입시키는 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다음 영화를 위해 염두에 둔 일화도 있다. 그건 미리 공개하기 힘들다.
- <해운대> 다음 작품도 준비하고 있나. 이제는 예전보다 더 많은 기대를 받을 것 같은데. = 너무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몇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해운대>보다 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어쨌든 나름 한국영화계 안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행복한 감독 중에 한명이기 때문에 허튼 곳에 쓰지는 않으려 한다. 이왕이면 더 발전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에 걸고 싶다. <해운대>가 내 인생의 정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어야겠지. 그래서 회사 이름도 두사부필름에서 JK필름으로 바꿨다. 로고로 기차를 내세웠다. 이제 다시 앞만 보고 달리자는 거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