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스토크. <재크와 콩나무>에서는 하늘로 솟은 거대 콩나무 줄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지만 배명훈의 소설 <타워>에서는 674층, 2408m 50만명이 밀집해 사는 상상의 국가이자 초대형 복합빌딩의 이름이다. 배명훈은 상상의 건물 하나를 세상으로 구축한 뒤 여기에 세상살이의 은밀한 촌극과 그렇게 조금씩 웃다가 정신차려보면 문득 서글프고 무서워지는 모순 혹은 어딘가 남아 있을 사랑과 희망까지 동시에 그려 넣었다. ‘알라딘’에 연재되었던 6개의 단편을 묶어 <타워>라는 이름으로 출간했고, 그러자 한국 SF소설계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왔다고 다들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다. 대한민국과 지구상에서 벌어진다 믿었던 일들이 빈스토크 안에서 여러 변형으로 벌어지고 휘어져 반영되는 걸 보고나면 이 재기 넘치는 건물의 설계자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한국 SF소설계의 인기 필자다. =나로서는 SF만 계속 써온 건 아닌데… 어찌 보면 블루오션이라 좋기도 하지만(웃음)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다. <타워> 나오기 전에도 인터뷰를 몇번 했는데 그때마다 인터뷰 3분의 1의 질문은 SF 장르 전체에 대한 어떤 거였고 거기에 답해야 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때 느낀 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여럿이 같이 있어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SF작가라는 것이 일종의 낙인이 될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타워>를 보고 “이게 무슨 SF야”라고 하고 또 누구는 “이건 SF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정해놓고 쓰지는 않는다.
-주위에 팬들이 있어 이것저것 좀 물어봤다. 집필 습관 중에 이런 게 있다던데. 어떤 작품의 구상을 누가 미리 알게 되면 그건 당분간은 쓰지 않는다고. <타워> 후기에 소설은 꽁한 사람이 쓰는 거라고도 썼던데, 관련있는 건가 =문학 하는 분은 아니셨는데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해주신 말이다. 성격 좋은 사람은 말로 하면 된다. 하지만 소설 쓰는 사람은 뒤에 가서 깊이 생각하고 쓰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나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 관리하기 힘들어서이기도 한데, 더 중요한 건 거기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버리면 다른 곳에서 할 게 없어서다.
-소설은 언제부터 썼나. =대학 2학년 때 시작해서 군대 가면서 본격적으로. 그때 썼던 것들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2003년쯤 되니까 이제 뭔가 좀 되는구나 했던 것 같다. 2004년에 제대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썼는데 대학원 어떤 선배가 읽어보더니 어디 내보내라고 해서 대학문학상에 냈고, 단편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먹히는구나(웃음), 알게 됐다.
-20대 때와 지금 글쓰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지금은 즐겁게 쓴다. 20대 때는 다들 그렇듯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뭔가 좀 확실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은 이런 이야기하면 돌 맞는데, 요즘은 괴롭지 않고 즐겁게 쓴다. 돌 맞아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달에 한편씩 쓰지 않나. 해보니까 실은 스타일 차이다. 보통은 한 가지 소재를 잡고 치열하게 쓴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 경우에는 몇달을 잡고 계속 고치게 된다. 그런데 나는 다른 것을 써가면서 발전시킨다. <타워>에 실린 단편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는 다른 단편 <초록연필>을 발전시킨 거다. 사무실에서 필기도구가 사라지자 이게 어디로 가나 추적하는 건데, 이론과 리서치를 더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게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다(빈스토크 내부 미세권력연구소의 권력장 연구의 일환으로 값비싼 술병에 바코드를 붙인 뒤 그 술병이 선물로 전해질 때 어디로 어떻게 흘러들어가는지를 연구하여 권력의 계보와 흐름을 계측한다-편집자). <초록연필>을 생각했던 게 지난해다. 요즘 말 많은 회사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있었는데 대통령 바뀌자 출근 시간을 당기지 않나, 좀 이상했다. 히틀러 같은 절대 악마가 있어서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칸 한칸이 변하는 것 아닌가, 싶었고 그걸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어떤 리뷰는 내 소설을 보고 권력에 대한 심오한 풍자라고 하던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어떤 누가 문제여서 그 권력자를 단순하게 치환한 게 아니다. 의인화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각 단편들은 무엇을 따라 배치됐나. =맨 앞의 두편은 비판, 그 다음은 긍정적인 문제제기,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원래는 풍자가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쓰다보니 웃기기만 해서 되겠나 싶었다.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는 처음에 말랑말랑한 로맨스로 가려고 했는데 <타워> 소재에 녹이면서 처음의 것이 아니라 좀더 큰 이야기의 사랑이 됐다. 도대체 왜 하는 거지, 하는 사랑.
-<타워>는 알라딘에 연재한 단편을 묶어 낸 책이다. =편집자들이 먼저 추진했다. 지난해 12월쯤. 대강 간략한 내용을 달라고 하더라. 1월에도 얘기가 있었는데 다른 연재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시작했다.
-<타워>의 주무대인 빈스토크의 설계 계기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거다. 다큐멘터리 채널이었다. 두바이쪽 빌딩에 관한 것이었는데 엘리베이터를 더 빨리 가게 하는 건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그걸 못하는 건 사람들이 어지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지하철도 사실 그럴 것이다.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이다. 공학적인 문제 이외의 것, 사람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공학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의 문제는 어떤 식으로 들어오나, 하는. 그렇다면 그걸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로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면서 보는 이야기를 여기에 넣고 그걸 SF라고 우기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웃음) 수직주의, 수평주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던 것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이 거대 빌딩 빈스토크의 ‘건물 안내도’를 그려서 따로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하철 노선도도 잘 못 그리는데 3차원 공간을 그리기는 좀 어렵고. (웃음) 누가 여기 산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디쯤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걸 생각한다. 도시에서 중심지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도시에서 중심지가 발생하듯이 여기서도 땅값이 비싸고 싼 곳이 형성될 것이다. 가령, 상층은 운송문제 등이 있으므로 부촌일 것이고 하층은 좀 빡빡하고, 그 사이사이 못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하는 식으로. 엘레베이터들을 가운데에다 공용으로 만들어놨는데 그게 모자라니까 건물 외곽쪽에 더 만들고 그게 도시의 고속도로 역할과 비슷해지자 고속도로 주변 땅값 오르듯이 그 엘레베이터 주변 집값 오르고. 혹은 창가쪽은 경관이 좋으니까 비싸고. 이런 식이다.
-그 빈스토크 안에 당신의 거주지가 있다면 몇층이라고 상상하나. =창가쪽에 살았으면 좋겠다. 휴양지쪽에. 대한민국 영토로 치면 동해안쯤 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 (웃음) 674층 중에서 50층쯤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미세권력연구소가 30층쯤에 있으니까.
-<타워>가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여하튼 국내외 사회정치적인 일을 연상시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후기에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신 L씨의 건강을 기원한다”라고 썼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그 분일 거라 추측한다. =그렇다. 그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단편 중에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라는 단편이 있다. 2007년 대선 끝난 다음에 쓴 글인데 어떤 주인공이 총통 선거 다음날 천재 과학자인 와이프에게 지금이 너무 살기 싫으니 5년쯤 동면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깨어났는데 여전히 4년 중임이고, 다시 동면에 들어갔다가 깨보니 유신이고, 뭐 이런 식이다. 그분이 가끔 매스컴에서 한마디하실 때 보고 있으면 너무 기발하지 않나. 작가로서는 오랫동안 우리 세대가 겪은 게 너무 없어서 불리한 것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분명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작가로서 말하자면 꼭 창작지원사업 받는 것 같다. (웃음)
-<씨네21> 동료가 말하길 당신 소설은 “설정은 강력한데 정서적”이라고 하더라. =설정이 강력한가? 여하튼 나는 SF라고 생각하지 않고 썼는데 SF라고 규정된 사례다. 원래 SF 마니아들은 그런 소설을 많이 읽고 이 분야 대가들의 감성을 잘 아는데 나는 사실 잘 모른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 푸는 방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살면서 보고 느끼고 하는 이야기들. SF를 쓰기 위해 그 종류의 책을 열심히 읽는 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되레 과학책을 읽거나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거나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공학적인 것으로만 채우면 메뉴얼만 나온다. 사람들 사는 데에서 많이 문제의식이나 해법을 끌어온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 <샤리아에 부합하는>의 후반부에 “이 나라 전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 동네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라고 쓰여 있다. 글 안에서 빈스토크가 바벨탑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처음 구상단계에서는 비판적인 시선만을 염두에 두고 가늘고 높은 건물을 상상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으로 쓰자 했더니 건물이 뚱뚱해지더라. 빈스토크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나조차도 수직주의자들처럼 살고 있지만 수평방향에 대해 생각하고자 했다. 이 소설에 일종의 대안이 있다면 그건 생명, 삶이다. 그게 우리 사회에 대한 나의 대안과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생명의 문제인 것 같다. 그걸 작가로서 말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눈을 깜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질문은 문명에 대한 것에서 시작했지만 풀기는 생활이라는 형태로 해본 거다.
-책의 뒤편에 실린 부록은 독자들의 댓글을 반영한 것이라고. =<자연예찬>에서 K라는 작가가 북극곰이 해탈했다는 이야기를 썼다는 게 농담처럼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서 짧게라도 덧붙여 써달라고 해서 썼고, P와의 인터뷰(P는 사람이 아니지만 <타워>를 관통하는 중요한 존재이며 권력장 연구의 핵심적 변수에 해당한다-편집자)는 독자 서비스고, 카페 빈스토킹 이야기는 내 생각에 꼭 들어가야 하는 부록이었던 것 같다.
-빈스토크를 소재로 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 같다. =30년 동안 써먹을 수도 있을 거다. 그중 몇 가지만 잘 써도 좋은 책이 나올 것 같긴 하다. 작가로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내 작품을 보고 누군가 그도 뭔가 하고 싶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타워> 일러스트 해주신 ‘오기사’ 오영욱씨도 처음에는 바빠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책을 읽어보고 맡아주셨다. 그런 게 가장 좋다. 어떤 창작자의 마음속 불을 지피는 게 내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문이겠지만 <타워>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더 애착이 가는 걸 꼽을 수 있나. =<자연예찬>. 실은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대개 여자들은 <타클라마칸 배달사고>, 남자들은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을 좋아한다. 어떤 경우에는 닉네임만 아는 사람이라도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 여자군, 하고 알게 된다.
-다음 작품은. =어떤 행성에서 15만년 뒤에 일어나는 일이다. 장편인데 이게 설명이 쉽지 않다. 신이 있는데 그가 인공위성의 궤도를 돌고 있다. 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 도달해야 하는 이야기다. 성직자가 나오는데 신이 궤도에 있으니까 성직자는 천문학자여야 하고….(듣고도 아직은 정말 잘 모르겠다-편집자) <타워> 들어가기 전에 절반 정도 썼고 8월까지는 끝낼 생각이다.
-상투적이지만 영화지니까 이런 질문 하나 해보자. 어떤 영화 좋아하나. =인도영화! 우리나라에 왜 많이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인도대사관에서 상영회할 때면 가끔 간다. 그런데 인도영화와 인도 음식만 좋아하고 인도는 별로 안 좋아한다. 뭄바이에 갔었는데 이미지가 너무 안 좋더라. (웃음)
-이 표현 쓴 기자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니 가서 묻지는 말라고 그랬는데 그래도 물어보자. 요즘 유행하는 초식남이 분명할 거라고 하더라. (웃음) =맞다. 나 초식남이다. (웃음) 그런데 그게 뭐 나쁜가?
-초식남에게는 애인보다 취미생활이 제일이라던데, 가장 열중하는 취미는.. =글을 자주 빨리 쓴다고 말했으니 당연히 취미생활은 글쓰기라고 해야 욕을 덜 먹을 것 같다. 한달에 한편씩 쓰니까 취미생활 열심히 하긴 하는 거다.
-취미생활 하나 더 하면 어떨까… <씨네21>에 길티플레저라는 코너가 있는데. =좋다. 그런데 뭘 쓰지? 요즘 곧잘 인터뷰하다 보니 아닌 말도 하게 되더라, 이런 거?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