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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쌍안경이 패션이 되는 순간

1930년대 영국의 엄격한 사립학교. 위인 동상과 아이비 넝쿨로 둘러싸인 기숙학교에서 가이 베넷(루퍼트 에버렛)은 확실히 ‘부정적으로’ 눈에 띄는 존재다. 실크해트와 모닝코트, 페이즐리 베스트까지 갖춘 채 교정을 거니는 고상하고 단정한 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방탕하고 분방하며 거만하다. 셔츠 단추를 채우지 않거나 밑단을 깃발처럼 펄럭이게 꺼내놓는 건 기본이고 핑크와 블루가 섞인 레지멘털 타이는 늘 한쪽으로 틀어져 있다. 트위드 재킷은 입는 대신 대체로 어깨에 걸치고 교련 사열 때조차 흙투성이 구두를 신고 등장해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한다.

<어나더 컨트리>

시니컬한 영국식 악센트로 기분 따라 아무 말이고 내뱉는 이 청년은 품위나 명성, 지위를 잃을까봐 위선을 떠는 귀족들을 경멸한다. 그는 스스로 아주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것,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 게이라는 것, 그리고 동급생인 제임스 하코트를 사랑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가령, 제임스와의 첫 번째 데이트 때 버튼홀에 제비꽃을 꽂은 턱시도를 입은 그가 주문한 건 ‘여기서 가장 비싼 샴페인’이었고 정원을 걸어가는 제임스를 창에서 바라볼 땐 ‘저 아름다운 목에 꿀을 부어 핥아먹고 싶다’고 탄식한다. 주변의 누가 어떤 얘기를 듣고 그걸 누구에게 떠벌릴지는 그에겐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건 제멋대로인 가이도 소심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니 쌍안경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하루 종일 제임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쌍안경을 산 그는 사감에게 ‘자연관찰용’이란 한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명분을 댄다. 허락을 받은 뒤엔 어딜 가든 그걸 걸고 있다. 크리켓을 할 때, 수업을 들을 때, 심지어는 마르크스를 읽는 공산주의자 친구의 곁에서도.

아마도 커밍아웃을 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명일 루퍼트 에버렛은 이 영화에서 꽃처럼 아름답다. 진한 밤색 곱슬머리와 체리색의 선명한 입술, 잉여 지방이라고는 없는 가파르고 마른 뺨, 평원의 가젤처럼 날씬한 몸. 화살촉 같은 코가 마음에 걸리지만, 그의 말대로 ‘아름다운 건 다 살짝 균형이 맞지 않는 법’이니까. 옥스퍼드와 트위드를 주소재로 한 영화 속의 흐트러진 프레피룩도 청년 루퍼트 에버렛에게는 어떤 실크보다 더 우아하게 어울린다. 참, 쌍안경과 함께 이 영화에서 놓치면 안될 두 가지가 있다. 크리켓 장면 때 루퍼트 에버렛의 패션(랑방의 알버 엘바즈가 이 장면을 봤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데뷔 시절의 콜린 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