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식, <책가도>, Inkjet print on Korean paper, 102cm×130cm, 21pieces, 2008
조선시대 선비의 방엔 지필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면학 분위기 조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 선비들은 아들의 방에 꼭 이것을 걸어주었다고 한다. 바로 ‘책거리 그림’이다. 책거리는 보통 책 한권을 다 읽었을 때 그걸 기념하는 의미에서 치르는 행사라고 알려졌지만, 책·부채·도자기 등을 소재로 그린 정물화풍의 그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진짜 서재처럼 가로로 길게 펼쳐진 책장 그림 안에 오밀조밀하게 놓인 선비의 물건들은 정갈하고 우아하다.
<전통의 재구성: 책거리 그림전>에서는 10명의 작가(강용면, 김민수, 김지혜, 남현주, 박윤경, 오병재, 원인호, 이규환, 이창민, 임수식)가 조선시대 책거리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조선시대의 그림이 선비의 삶을 반영하는 기록사진 같은 증거물이었다면, 21세기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좀더 관념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15장의 부분 사진을 이어붙여 거대한 책장을 완성한 임수식 사진작가의 <책가도>, 책장의 디테일을 통해 동시대 지식인의 허상을 풍자한 박윤경 작가의 <책장>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