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 지수 ★★★★★ 패러디 지수 ★★★★
적당히 살집이 있는 호리병 몸매도 ‘풍만’이라 부르는 시대다. 이 편협한 개념의 ‘풍만’을 보기좋게 비웃는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거장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전이다. 튼실한 허벅지, 우람한 체격을 가진 보테로의 인물들은 관객이 ‘여백의 미’를 즐길 틈도 없이 캔버스를 장악해버린다. 거대한 발뒤꿈치로 힘차게 땅바닥을 치고 딛는 댄스장면에서는 우리가 오래 잊고 있던 어떤 원시적인 역동성마저 느껴질 정도. 채색과정에서는 붉은색, 노란색 등 원색을 자주 사용해 정적인 그림조차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겁먹은 듯 크게 뜬 눈과 익살맞은 표정은 거대한 몸집과 대비되며 웃음을 자아낸다. 섬세함과 절제미의 반대말 같은 보테로의 그림들은 이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과 쾌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과연 에너지가 넘치는 라틴아메리카의 유산답다.
페르난도 보테로가 인간의 풍만한 몸을 즐겨 그리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관객이 등장인물의 두툼한 살집 속에서 시대의 감춰진 욕망을 읽어내길 원한다. 깡마른 몸을 선호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모두에게 강요하지만 기저에는 여전히 풍만한 육체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는 시대, 주위의 모든 배경보다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냄으로써 무소불위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권위자가 존재하는 시대. 보테로의 그림 속 인물 신체의 과장된 양감은 비정상적인 형태로부터 ‘정상적 삶의 모순’을 이끌어내려는 작가의 위트있는 시도다.
보테로의 회화 89점과 조각 3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회는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인물화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보테로의 정물화와 그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고전작품 패러디물이 소개된다.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어떻게 탈바꿈됐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 3부는 라틴의 삶과 사람들이 주제로, 라틴 지역색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투우와 서커스를 조명한 4부의 작품들은 역동성이 두드러지며, 야외조각 작품을 다룬 5부에서는 조각가 보테로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를 위해 페르난도 보테로가 내한해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betero.moca.go.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