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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대한민국 아저씨의 초상
장미 2009-07-02

뮤지컬 <락시터>/ 8월16일까지/ 소극장 축제/ 강민호, 오종훈, 이봉련, 오의식

처음엔 ‘락시티’인 줄 알았다. 락과 청춘, 도시 생활을 결합한 <렌트>류의 뮤지컬이거니 싶었다. 그러다 연출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위성신, <늙은 부부 이야기> <염쟁이 유씨>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등으로 나이듦의 깊이, 아득하고도 아름다운 세월의 넓이를 보여주던 바로 그 연출가다. 다시 한번 제목을 확인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오해가. 낚시터의 응용 버전, ‘락시(樂時)터’다.

서울 근교쯤으로 짐작되는 어느 저수지. 30대 남자 곁에 60대 남자가 자리를 잡았다. 젊은 쪽의 이름은 가제복, 흰머리는 성성하다만 여전히 원기왕성한 노인네의 그것은 오바마로 착각하기 십상인 오범하다. 간섭받기 싫은 가제복에게 오범하는 자꾸만 말을 걸고, 그 사이 낚시왕, 저수지 요금 징수원, 다방 레지, 껌 파는 노부부, 불륜 남녀, 비아그라 판매상 등이 끊임없이 들락거린다. 스트레스로 폭발하기 직전인 신경질적인 30대와 언제나 청춘이고픈 철없는 60대의 대결. 우연히 불붙은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져가기 직전, 버릇없는 고등학생 커플이 들이닥치면서 그들에 비하면야 늙은 놈과 더 늙은 놈일 뿐인 두 남자는 돌연 같은 편이 된다.

부제는 ‘즐거운 시절’. <락시터>는 확실히 공연 초반보다 후반이, 보기 전보다 후가 더 즐거운 뮤지컬이다. 다방 레지를 비롯해 일부 조연들은 폭발적인 웃음을 선사하고, 마지막 순간 찾아든 두 남자의 고백은 콧망울을 시큰하게 만든다. 그 낚시터엔 당신의 미래, 혹은 우리 아버지의 현재가 웃기면서도 애잔하게 서 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이 시대 아저씨들의 초상이다.

희곡작가 이근삼의 <낚시터 전쟁>에서 모티브를 얻어 위성신이 쓰고 연출한 신작 공연이다. 강민호·오종훈이 가제복-오범하 콤비를, 이봉련·오의식이 나머지 모든 역할을 1인 다역으로 소화한다. 특이하게도 주인공 중 하나인 강민호가 작사 및 작곡가로 참여했다. 고루 인상적이지만 특히 대사 치는 리듬이 탁월한 이봉련의 연기에 주목하시길. 배꼽 잡고 무너지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