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관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앞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보다보면 미소가 번지는 작은 기억이 떠오른다. 전방사단의 군사진병으로 아마도 제대를 6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이었을 것이다. 사단정훈과에 벨앤드하우얼사의 16mm 영사기와 영화 여러 편이 들어왔다.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군정책의 하나였으리라. 지금은 덜하지만 내가 가진 재능이나 기술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여 말하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던 젊은 시절이었다. 그날 나는 바로 사단의 영사기사가 되었다. 사단직할대대를 돌며 영화를 ‘돌리는’ 막강한 보직을 갖게 되었다. 다른 작업에서 열외가 되고 내무반에서 점호도 면제가 되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말이다.
영화를 상영할 부대에 도착하면 식판에 방금 끊인 라면이 담겨져 나왔고 새 군복과 군화도 받았고 힘있는 부대에선 여러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외박증도 발급해주었다. 여러 번 접은 흰색 천을 펼쳐서 운동장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연결하면 그런 대로 괜찮은 스크린이 완성되었다.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잘난 척을 하면서 펼쳤을까 웃음이 난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나 괴로운 보직임을 깨닫는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좋았지만 비슷한 부분에서 항상 필름이 끊기는 같은 영화를 수없이 반복해서 봐야만 했고 필름을 바로 연결하지 못하면 관객(?)의 항의는 무서울 정도였다. 또한 영화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배우의 대사가 동시에 나의 입에서도 웅얼거리는 경지가 된다. 대표적인 영화로 <킬링필드>를 40번 넘게 봐야만 했다.
그래도 운동장에 모여 바닥에 철퍽 앉아서 영화를 보던 그 시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감독의 생각은 뭘까, 왜 저렇게 촬영을 했을까, 왜 저렇게 연기를 하지? 하면서 같은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다르게 뜯어보게 되었다. 그래야 시간이 잘 흘러가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때가 영화와 깊은 관계를 맺는 시작의 순간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강원도의 시원한 바람과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들과 함께 흰색 천의 허접하지만 소중했던 스크린 위에 반복되던 영화들이 기억난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