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18시간을 자도 자학하지 않는다. 다만 행복해할 뿐. 새벽 3시에 라면을 먹어도 그저 맛있기만 할 뿐. 어깨가 뻐근해질 때까지 게임을 해도 다만 뿌듯해할 뿐. 아 물론 매일 18시간씩 자며 밤마다 라면을 먹고 3∼4시간씩 게임을 하는 인생을 살고 있진 않습니다. 이거 왜 이러세요. 나도 사람임. 나란 인간이 이래서 ‘너의 길티플레저는 뭐냐’는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 난 웬만해선 길티를 안 느끼는 뻔뻔한 여자! 나란 여자, 그런 여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나에게도 아아 이러지 말자 하면서도 계속 하게 되는 찝찔한 즐거움, 길티플레저가 있다. 우울이 바닥까지 가면 자연스레 하게 되는 그것. 근데 너무도 자주 하게 되는 그것. 바로 공포의 7시간 웹서핑이다. 뭐 간단하다. 많이들 하는 바로 그것이다. (아 많이는 아닌가?) 웹브라우저를 켜고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뉴스난의 헤드라인을 전부 다 눌러보는 것이다. 왼쪽 신문사, 오른쪽 신문사 할 것 없이, 인터넷 언론, 스포츠 신문 할 것 없이, 정치 얘기부터 신인 여배우 비키니 얘기까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까지 전부.
그러다 다 읽었다 싶으면 이제 블로그로 넘어간다. 사실 여기부터가 공포의 7시간 웹서핑의 백미다. 뉴스고 뭐고 클릭하다보면 평소에 아무 관심이 없던 키워드를 왠지 검색창에 쳐보고 싶고, 나오는 검색 결과를 왠지 눌러보고 싶고, 그러다보면 여긴 어디인가, 이건 누구의 블로그인가. 앗, 이건 이 사람의 엄청 야들야들한 부분. 이 사람이랑 매일 얼굴 보는 사람들도 아마 모르고 있을 그런 부분을 내가 지금 보고 있네. 이 사람은 어떤 가수의 팬인데 여자친구가 생긴 걸 알고 쇼크에 빠졌구먼(하지만 용서하겠지. 팬과 가수란 그런 관계니까). 이 사람은 여자를 못 만난 지 너무 오래되어 욕정을 스스로 주체 못하고 계시네(하지만 안 생기겠지. 욕정을 풍길수록 여자는 도망가니까). 이 사람은 어둠의 포스를 모두 모아 잡글로 승화했네. 중2병이네(뭐 언젠간 철들겠지…). 음 리얼이네. 소름 돋네.
뭐 이렇듯 주제는 무한하다. 그저 주인장의 인간적인 면모가 여과없이 드러난 포스팅이라면 다 좋다. 인간적이기에 가지고 있는 모순이 충돌하는 모습. 요컨대 이런 것. 스스로를 반성하는 포스팅에 ‘그래요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댓글이 달린 걸 보고 격분하여 댓글 싸움으로 번진다든지. 스스로 반성은 해도 남이 지적하는 건 싫다 이거지. 아아… 너무 좋아… 길티해…(지금 쓰면서 좀 쪽팔린 거 보니 이거 진짜 길티한 듯).
인터넷의 익명성이 주는 날개를 달고 자기 마음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버리는 순간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다. 실제로 만나면 오히려 보기 힘든 지점. 내 기준에서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재미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소설이나 영화가 가지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지점일지도 모른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했지만 한번 하고나면 스스로가 방구석 먼지처럼 느껴지긴 한다. 자주 한다는 게 더 문제다. 끊지는 못해도 좀 줄이기는 해야겠지….
오지은 엔간한 일에는 길티조차 느끼지 않는 뻔뻔한 음악인. 얼마 전 2집을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