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는 아니지만 음식 종류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한 편이다. 샤브샤브보다는 구워먹는 고기를 택하고, 칼국수보다는 김치찌개를 택하며, 해물찜보다는 생선회를 택한다. 다만 굳이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맛있는 고깃집을 찾아 나선다든지, 생선회는 꼭 바닷가에서만 먹자든지 할 생각은 별로 없다. 식탁에 앉기 전까지는 별로 까다롭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다가도 눈앞에 음식이 나타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때부터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주어진 조합을 이용해 최대한 맛있는 식사를 하느냐다.
된장찌개백반을 주문했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아무것도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첫 번째로 입에 넣을 것인지가 문제다. 김이 나는 흰 쌀밥을, 또는 먹음직한 잡곡밥을 기분 좋게 퍼서 덥석 물 수도 있다. 이때 숟가락으로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양을 뜬다면 머슴이 실컷 일을 한 뒤에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치우는 느낌으로 밥맛 좋게 식사를 시작할 지도 모른다. 젓가락으로 소담스럽게 먹는다면 양갓집 마나님이 그러하듯 밑반찬 맛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식사를 할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찌개로 식사를 시작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백반집이라면 찌개는 분명히 뚝배기에 담긴 채 식탁 위에 놓였으리라. 찌개로 식사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은 바로 그 순간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조금이라도 망설였다가는 성난 듯 기포를 마구 뿜어대는 찌개의 국물을 한 숟갈 떠 약간만 불어 식히다 그 열기가 완전히 가시기 전에 입천장이 데는 것만을 면하며 겨우 후루룩 삼키는 쾌감을 맛볼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수도 있다.
그 다음에는 밥과 찌개를 어떻게 같이 먹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찌개로 식사를 시작했다면 뜨거운 찌개를 곧바로 가져와 후후 불어서 먹고 밥을 따로 먹는 방식을 고수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은 뜨거움을 너무 많이 견뎌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실용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찌개를 어딘가에 덜어서 식혀먹어야 할 텐데, 밥그릇에 담아서 밥과 비벼먹는 방법이 있고, 앞 접시에 덜어먹는 방법이 있다. 밥과 비벼먹는 방법은 앞서 말한 머슴의 식사를 재현하는 강점이 있다. 그렇게 할 경우 찌개에 비빈 한 숟갈을 떠낸 뒤에도 밥에 찌개국물이 묻기 때문에 그 다음 숟갈을 맨밥으로 먹고 싶어지면 낭패를 보게 된다. 앞 접시에 덜어서 먹으면 이런 문제는 해결된다. 한번은 비벼먹고 한번은 따로 먹는 것도 가능하다. 그 모든 방법을 다 써본 뒤에도 보란 듯 맨밥을 한 숟갈 먹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다. 이 방법의 치명적인 단점은 찌개가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는 것이다. 조금씩 덜어 바로바로 먹는 방법도 있다. 한데 뚝배기에서 국물 한 숟갈과 애호박 한점을 같이 떠서 앞 접시에 덜었다고 가정해보자. 거기에는 애호박 한점밖에는 없다. 국물은 접시 바닥에 고루 퍼져 하나의 얇은 막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상태일 테니까! 이쯤 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뚝배기에서 입으로 직행하는 방식을 다시 취하는 것이다. 정 건더기를 먹기가 어렵다면 일단 국물만 후후 불어서 떠먹고, 건더기는 따로 집어 밥 위에 얹어 비벼먹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맨밥이 찌개국물에 오염되는 범위가 최소화된다.
식탁 앞에 앉으면 나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의 포인트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적절한 방법 택하기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매번 다르다. 오늘은 감자탕에 소주나 먹을까. 첫 번째 문제는, 일단 빈속에 소주 한잔을 탁 털어넣을지, 끓을 때까지 기다려 국물부터 한 숟갈 뜰지, 아니면 쌈장에 오이를 찍어 상큼하게 시작할지.
장기하 ‘눈뜨고코베인’의 드러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다. 싱글 ≪싸구려 커피≫와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를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