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 이야기를 만들었다. 의심스러운 예상과 달리 일본계 미국인 프로듀서 게이코 방은 우리를 뜨끔하게 한다. 그녀가 만든 <Hip Korea>는 한국의 팝 스타를 통해 한국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디스커버리채널>에서 방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피소드1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인공인 가수 ‘비’는 자랑스러운 월드스타로 소개된다.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거친 그의 모습이 질곡을 거쳐온 우리나라의 모습과 교차편집된다. 역사를 조곤조곤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듣노라면, 제작자인 게이코 방이 누구보다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란 걸 실감한다. 그녀가 사장으로 있는 ‘방 프로덕션’은 주로 일본, 중국, 한국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인터뷰 현장에서도 그녀의 대답 하나하나가 가슴에 사무친다. “그렇게 큰 전쟁인 임진왜란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한국인으로서 절로 숙연해진다.
-얼마 전 <Hip Korea>의 첫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속편은 어떤 내용인가. =지난 20년간 한국은 정치·경제·문화면에서 변화가 많았다. 연예산업도 크게 바뀌었다. 이병헌의 삶은 첫 10∼15년간의 변화를 상징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길목이다. 첫 에피소드처럼 한국사회의 변화를 담아낼 것이다.
-첫 에피소드와 차이가 별로 없는 듯한데. =이병헌은 정지훈(비) 이전의 시대를 다룬다. 1992년 이병헌의 데뷔 직후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스크린 안에서 정치적인 표현들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모래시계>와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이병헌이 활동하는 도중에는 남북정상회담도 있었다.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정지훈이다. 섭외가 어려웠겠다.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정지훈뿐만 아니라 박진영, 김제동, 박찬욱 감독 등 등장한 사람 대부분이 한번도 섭외를 거절하지 않았다. 실은 최근 강화되는 영상, 음반의 저작권 문제가 가장 발목을 잡았다. 아무도 안 보는 영상들을 삽입할 순 없으니까.
-<Hip Korea>를 계획하는 과정은 어땠나. =계획 단계가 길었다. 한국 정부와 <디스커버리채널>, 스타들을 설득하다가 최근에서야 기회가 찾아왔다. 최근의 한국은 경제적 성장을 맞으면서 문화적으로도 다양해졌다. 5년, 10년 전이라면 너무 일렀을 것이다.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설명해야 하나? (웃음)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열정적이고 감정적이다. 일본은 섬세하고 조화롭지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중국에서도 9년간 살아봤지만 중국은 조금 더 발전이 필요하다.
-방 프로덕션의 작품이 서구 취향인 것은 물론, 동아시아 PD포럼을 비롯해 국내 강연에서도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라는 얘기를 했다. =국내 비즈니스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는 아니다. 해외시장을 공략할 때의 방식을 점검하라는 얘기다. 서구시장을 개척하고 싶다면 그들의 취향을 연구하고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혹시 <워낭소리>는 봤나? 독립 다큐가 100만 관객이 넘었다는 거, 신기하지 않나. =물론이다. 그런 다큐멘터리는 계획한다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국에서 종이 오리는 여자에 관한 다큐를 찍을 때에도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찍는 도중에 누가 죽는 일도 있었다. 제작자에게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다음 프로젝트는. =임진왜란에 관한 다큐를 준비 중이다. 임진왜란은 아시아 역사에서 두 번째로 큰 전쟁이었는데, 같은 아시아인인 중국인들조차 모른다. 영어로 된 다큐는 아예 없다. 하지만 사상자부터 장군들이 남긴 일기까지 놀라운 정보가 너무 많다. 재현을 위해 거북선도 만들었고, 배급도 전세계를 대상으로 준비한다. 이번 가을부터 작업에 들어가 내년경에 끝낼 계획이다. 전문가들의 협조를 받아 준비도 많이 했다. 임진왜란을 일컫는 말이 한·중·일이 다 제각각이라 우리가 새로 이름을 붙였다. <Waterdragon Wars>(가제)다.
-정지훈, 이병헌 다음으로는 누가 출연하나? <Hip Korea>의 전망은. =그건 밝히면 안된다. 아직 문서상으로 준비할 게 있어서다. 프로그램이 제법 인기가 높아 에피소드가 앞으로도 더 나올 것이다.
-혹시 팬으로서 이병헌, 정지훈을 좋아하는가? 혹시 누나팬. =꼭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덕분에 한류 열풍보다 한 발짝 앞서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일본인 여자친구들이 한국인 남자에 대해 자주 물어와 이제 지겨울 정도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