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혹했다. 쇳소리를 내며 꺾이는 목소리와 번쩍거리는 화장이 멋져보였다. 심하게 일본적이니까 끌렸던 것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창피했다. 왠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디 가서 좋아한다 소리 못했다. 술기운에 갑자기 말이 튀어나올라치면 길티플레저라 둘러 얘기했다. 좋고 싫은데 가릴 게 뭐 있냐 싶지만 왠지 이건 아무 데서나 말하면 안될 것 같았다. 하마자키 아유미, 그리고 고다 구미에 대한 이야기다.
하마자키 아유미의 새 앨범 판매량이 30만장을 훌쩍 넘겼다. 그리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하마자키는 이제 언제 앨범을 내도 평균은 넘긴다는 느낌이다. 고다 구미는 3월에 발매한 베스트 앨범이 20만장 넘게 팔렸고 동생 미소노와 듀엣으로 부른 노래는 발매 첫날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승승장구다. 최근 일본 차트를 보면 결국 여자 가수는 이 둘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아는 벌서 수년째 지지부진이고 돌아온 우타다 히카루는 장사보다 예술에 관심이 더 많다. 퍼퓸이 새롭긴 하지만 아직 뭐라 결론을 내리긴 이르다. 좀 촌스럽긴 해도 시장은 에이벡스의 저 두 여자 몫이다. 수년째 그렇다.
하마자키와 고다는 무척 갸루(girl)적이다. 그런데 그 갸루적인 게 팔린다. 얼마 전 잡지 <브루투스>는 일본 경제를 갸루가 구한다고도 썼다. 유행에 민감하고 불황에도 위축되지 않는 그녀들의 소비 패턴이 일본 경제의 유일한 출구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흑자를 보는 기업들은 대부분 갸루 타깃 종목들이다. 3월에 갸루 컨셉숍까지 오픈한 유니클로, 캇툰을 모델로 내세운 롯데, 휴대폰 쿠폰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인 맥도널드 등. 고다와 하마자키의 흔들림없는 인기도 이해가 된다. 갸루는 둘의 노래를 즐기기에 앞서 지지한다. 보아가 아무리 애를 써도 못 따라가는 이유다. 하마자키와 고다는 갸루들의 이상형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아게(アゲ, 심하게 부풀려 올린) 머리에 데카메(デカ目, 팬더처럼 크고 시커멓게 화장한 눈), 반짝반짝 뱅글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데코네일. 사실 갸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다. 시커먼 화장의 고갸루나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오갸루, 자기가 공주인 줄 아는 케라나 마님 행세를 하는 소악마. 별난 게 종류도 많지만, 이들이 새로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100가지 중 한 10%가 남는다. 디저트를 스위트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갸루였고, 곱창밴드를 유행시킨 것도 갸루다. 고다와 하마자키의 노래가 싫지만 또 싫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둘은 지나치게 화려하고 과하지만 어느 순간 멋진 인상을 남긴다. 그게 둘의 장수 비결이고 갸루의 매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