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28일, 일본 나가노의 아사마 산장을 점거하고 열흘간 인질극을 벌였던 무장학생운동 세력 ‘연합적군’ 일당 5명이 체포되었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 총격전도 불사했던 이들은 체포 이후 ‘도피 과정에서 자아비판과 함께 12명의 동지들을 처형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동료들의 잔혹한 린치에 목숨을 잃은 12명 중에는 임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 이미 쇠퇴일로를 걷던 학생운동은 이 충격적인 ‘아사마 산장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와해되었다.
같은 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시라케’(白け)라는 신조어가 크게 유행했다. ‘퇴색하다’는 뜻의 동사 ‘시라케루’(白ける)에서 파생된 이 말은 세상 어떤 일에도 무관심한 풍조를 일컫는 용어. 무기력, 무감동, 무관심의 3무주의로 요약되는 시라케는 이상의 좌절을 끔찍하게 목격한 청춘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였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포크계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이노우에 요스이(井上陽水)는 문제적 싱글 <우산이 없어>를 발표했다. ‘도시에서는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오늘 아침에 배달된 신문 한구석에 써 있었어/ 텔레비전에서는 우리나라의 장래 문제를/ 누군가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는 오늘 내리는 비/ 우산이 없어/ 너를 만나러 가지 않으면 안되는데’라는 <우산이 없어>의 가사는 시라케에 젖어 있던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지금에야 이노우에 요스이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지만, 데뷔 무렵이었던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는 미디어에 대해 철저히 적대적인 입장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적시한 <우산이 없어>의 가사도 무관심보다는 불신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의 말미에서 이노우에 요스이는 질문한다. ‘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건 괜찮은 것일까?’라고. 요컨대 그는 이 노래를 통해 무기력증에 빠진 청춘들의 정서에 영합하기보다는 자문을 통한 각성을 촉구했던 것이다. 2008년, 서울의 젊은이들은 시청과 광화문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이듬해에 그들은 한때 개혁의 표상이었던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경험해야 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담배 한대 태우지 못했다는 소식에 하루에 열두번도 더 울컥하는 지금이지만,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다시 세태에 무관심해지거나 더욱 무기력해질지도 모른다. 그건 괜찮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