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들이 수고가 많다. 6월5일 개막한 서울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필름페스티벌은 흥겨움 반 불안 반이었다. 퀴어문화축제의 예산 자체가 많이 줄었고 영화진흥위원회에 신청한 영화제 기금 지원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돌연 장소 사용 허가를 취소당한 인권영화제보다야 사정이 낫다고 하겠지만 향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연 축제는 조심스럽다. 영화제 인력도 줄어 프로그래머인 케니 준과 홀릭은 올해 직접 자막 작업을 했다. 개막 둘쨋날 찾은 극장에서도 둘은 상영관 이곳저곳을 오가느라 바빠 보였다. 결국 인터뷰는 길게 진행할 수 없었고, 해외 작품을 담당하는 케니 준은 인터뷰 도중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홀릭도 인터뷰 내내 다른 스탭의 요청에 시달렸다. 영화제, 왜 이렇게 힘들어진 걸까. 올해로 10회를 맞은 서울LGBT필름페스티벌의 사정을 들어보았다.
-퀴어문화축제의 예산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영화제 사정은 어떤가. 케니 준=일단 가장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게 상영료와 대관료다. 상영료는 퀴어문화축제 기금으로 먼저 조달했고 대관료는 상영수익금으로 지불한다. 서울아트시네마쪽에서 우리 커뮤니티 재정 상태가 열악한 걸 아니까 배려를 해준다. 우리 같은 단체는 50% 정도 할인이 된다. 본래는 먼저 대관료를 지불해야 하는 거지만 우리는 수익이 나면 그걸 나누는 식으로 하고 있다. 홀릭=원래는 영화제 예산이 5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올해는 자막과 번역 작업을 프로그래머가 직접 한다. 정말 빠듯하다. 케니 준=일단은 영화진흥위원회에 기금을 신청했다. 결과는 아직 안 나왔다. 지난해에도 그 결과는 퍼레이드 당일 나왔다. 항상 그렇다. 결과도 늦게 나오지만 돈이 입금되는 것도 행사 시작 전이 아니라 이후다. 축제 준비에 돈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끝난 다음 메우는 식이 된다.
-올해 프로그램은 어떤가. 케니 준=일단 3개의 파트로 나눴다. 컨템포러리 퀴어시네마와 다큐멘터리 특별전, 그리고 국내영화 특별전. 장·단편 합쳐서 29편이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고르려고 한다. 재미있거나 감동을 주는 게 우선이다.
-사실 최근 퀴어영화제를 보면 프로그래밍 자체가 힘들어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퀴어 담론이 정체된 지 오래고 어떤 흐름이나 경향을 읽기도 어려워 보인다. 홀릭=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지금도 해외나 국내에서 계속 퀴어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퀴어영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성소수자 관련 작품을 계속 만드는 연분홍치마나 김조광수 감독 같은 사람도 있고. 그걸 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새로운 이야긴 아니지만 올해도 역시 큰 흐름은 대안가족이다. 홀릭=해외의 어느 분 이야기에 의하면 ‘퀴어 베이비’(Queer Baby) 시대라고 하더라. 국내 작품들은 좀 덜한데 해외 작품들을 보면 정말 아빠 둘, 엄마 둘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동성결혼을 지나 이젠 아이를 입양하는 동성커플들이 세계적인 이슈다. 동성커플을 지나 동성커플의 2세 이야기가 흐름인 것 같다.
-최근 퀴어영화들의 동향을 보면 여성 동성애자쪽 작품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소화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퀴어영화제 입장에선 고민일 것 같다. 홀릭=밖에서 볼 때는 두 영화제가 서로 상극처럼 보일 거다. 하지만 서로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갖고 오지 못하는 영화들을 여성영화제는 틀 수 있으니까. 물론 더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왜 퀴어들이 퀴어영화제보다 여성영화제에 많이 갈까. 아우팅 때문일까. 퀴어들이 퀴어영화제에 오면서 아우팅의 위험을 느끼는 걸까. 솔직히 이건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여성영화제가 그들에게 안전감을 줄 수도 있는 것 같고.
-올해가 10회다. 방향이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뭔가. 홀릭=10회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기금문제도 그렇고 시국도 그렇고. 사실 올해 수익이 안 나면 내년에 영화제를 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각오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다 관객이 1700명이었는데 올해 목표는 2천명이다. 물론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게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단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퀴어영화는 반드시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