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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리] <키친>의 디테일, 장난이 아니네
박찬일 2009-06-10

요리가 영화에 등장한 건 요즘의 일인 것 같은데, 깜짝 놀랐다. 요리의 사실성이 바짝 살아 있어서 ‘오홋~’하다가 끝까지 갔다. 원작을 거의 모독하다시피 엉성하게 만든 미국산 TV드라마 <키친 컨피덴셜>과 비교해보면 이 감독이 요리를 영화에 쓰는 법은 꽤 사실적이다. 전채와 메인 요리를 구별할 줄 알고 심지어 ‘쥐약’인 와인까지도 구성이 좋다. 요리 영화도 아닌 바에는 대충 해도 괜찮을 설정이나 장치들이 비교적 생생히 살아 있다. 대충 맹물에 삶아도 눈치챌 관객도 없을 텐데 굳이 채소를 우린 국물에 바닷가재를 넣거나, 남자 둘이 도미 비늘을 전용 칼로 벗기는 장면 등은 시쳇말로 ‘어, 장난이 아닌데’ 소리가 절로 나온다(하지만 서양요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놈의 불꽃 일으키는 푸람베는 일찍도 나오네). 그렇다고 요란하게 요리를 가져다 만찬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인공 세 사람의 갈등과 사랑을 건드리지 않는 정도에서 그친다. 요란하지 않아 더 맛있는 5첩 반상을 받아든 것 같다.

홍지영 감독은 여자 관객을 움직이는 법을 안다. 영화 <키친>은 그야말로 디테일의 향연이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설정들이 화려하다. 대사까지 물 많은 오이처럼 아삭아삭 씹힌다. 상쾌한 레몬스쿼시 한잔을 마시면서 보면 좋을 딱 그런 영화다(주인공 이름조차도 안모래, 박두레다. 이름만 들어도 영화가 어떨지 짐작되지 않나).

햇살이 잘 드는 아담한 가게(그것도 우산은 절대 안 파는 화사한 양산 가게라니!)를 운영하는 신민아, 펀드매니저 출신의 예비 요리사 김태우, 거기다 파리 출신의 천재 요리사 주지훈이 끓여내는 한판의 섞어찌개는 지루할 틈없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요리가 가득하다. 야채를 넣어 만 달걀말이와 아마도 연잎쌈(?) 같은 소박하지만 눈에 확 드는 요리로 기를 죽이더니, 도미찜 같은 고난도의 온갖 섬세한 요리들이 주욱 이어진다.

그렇지만 제목이 부엌이 아니고 키친이니 어쩔 줄 모르는 서양 취향이 도드라져 좀 섭섭해지는데, 그걸 무마하는 걸까. 요리평론가 방은진에게서 어울리지 않는 풀코스 요리로 왕창 깨진 뒤 결국 오케이 답을 끌어내는 묘수가 소박한 한국식 밥상이다. 여기에 방은진이 한방 더 보탠다. “답을 찾으셨군요.” 흠, 이건 좀 낯간지럽군.

대사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하면, “당신은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잖아”. 아직도 이런 대사, 유효기간이 남아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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