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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의 시대, 문화적 혁명
2001-11-28

<이지 라이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라슬로 코박스

1969년 제작된 <이지 라이더>의 출현으로 할리우드는 한 차례 홍역을 치른다. 이전까지 영화의 소재로 여겨지지 않았던 마약, 섹스, 록음악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으며, 영화 속 오토바이는 곧 저항과 일탈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영화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빛나는 성과도 있다. <이지 라이더>는 할리우드의 촬영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세트촬영에만 국한돼 있던 당시의 풍토에 곧 야외로케이션 촬영을 위한 새로운 장비와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고감도 필름과 가벼운 조명기구들을 찾게 되었으며 오토바이와 조명장비를 실은 트럭이 준비되었고 충격에 강한 컨버터블카에는 카메라와 베니어판이 설치되었다. 열악한 장비였지만 이제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촬영감독 라슬로 코박스의 거친 핸드헬드 카메라와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는 시대를 풍미할 자유로운 영웅상을 담느라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단지 직업을 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촬영은 곧 내 인생이었다.” 1933년 헝가리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라슬로 코박스에게 영화는 취밋거리가 아닌 운명이자 그를 지배해온 신념이었다. 어린 시절 나치치하의 조국에서 그는 정치선전물로 상영되던 영화의 포스터를 배포하였고, 그 보수로 마을 극장의 맨 앞줄에 앉아 접한 영화와의 첫 만남은, 16살의 일탈로 이어졌다. 농부인 부모의 바람을 저버린 채 수업을 빼먹고 극장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이후 부다페스트의 영화학교에 진학하여 닥치는 대로 영화를 섭렵하던 그는 <시민 케인>을 보았던 때의 감동을 평생 잊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영화를 설명해줄 어떤 자료도 없던 상황에서 독특한 영화의 조명과 구도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56년 당시 소련에 반기를 든 헝가리 혁명의 틈새였다. 코박스는 친구 빌모스 지그몬드와 함께 35mm 흑백카메라로 자유에의 절규를 3만 피트에 담았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필름은 팔렸지만, 기회의 땅 아메리카는 망명자의 신분으로 살아내기에는 여전히 낯설고 냉혹했다. 시련 앞에서도 그를 지탱해준 것은 촬영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이었고, 그칠 줄 모르는 노력은 그를 부여잡는 힘이 돼주었다. 이렇게 지그몬드와 그는 제작비 지원이 없는 영화의 촬영을 도맡았고 그럴 때마다 경험을 쌓아나간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나갔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평판을 얻게 되고, B급영화를 제작하던 로저 코먼 사단과 간접적으로나마 연계를 갖게 되면서 저예산영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지 라이더>의 뜻하지 않은 성공은 그에게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촬영감독으로 위상을 높여줄 탈출구를 마련해준다. 70년대 <갈등> <이상한 나라의 알렉스>와 같이 할리우드에서 시도된 적 없는 영상을 선보이던 그는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고스트 버스터즈> <마스크> <금지된 사랑> 같은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멀티플리시티>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등을 통해 주류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우뚝 선다.

18살의 헝가리 소년을 오늘날 세계적인 촬영감독으로 성장하게 해준 할리우드라는 발판은 실로 크나큰 것이었다. 그러나 코박스는 자신의 핏속을 흐르는 유럽인의 감성에 그 공을 돌린다. 어릴 적 영화학교에서 섭렵한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등의 공부가 단순한 촬영술이 아닌 예술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제 그는 부다페스트의 영화학교 강의를 통해 그 가르침을 고스란히 다음의 영상세대에게 물려주려 한다. “촬영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창의적인 면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촬영감독이 제어할 수 있는 기술력이다. 그러나 이 둘을 연결해내는 ‘빛’이야말로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빛은 촬영에서 핵과 같은 것이며, 빛의 제어를 통해 이미지를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바로 우리가 창조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진실을 더하는 것이다.” 코박스는 빛에 대한 고려없이 디지털의 장점만 보려 하는 젊은이들을 우려하며, 그것이 곧 영화라는 공동의 작업에서 촬영의 자리를 내주는 것임을 주지시켜주곤 한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다시 사랑할까요>(Return to Me, 2000) 보니 헌트 감독

<미스 에이전트>(Miss Congeniality, 2000) 도널드 페트리 감독

<잭 프로스트>(Jack Frost, 1998) 트로이 밀러 감독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1997) P. J. 호건 감독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 1996) 해럴드 래미스 감독

<카피캣>(Copycat, 1995) 존 아미엘 감독

<가라데 키드>(The Next Karate Kid, 1994) 크리스토퍼 케인 감독

<프리윌리2>(Free Willy 2: The Adventure Home, 1995) 드와이트 리틀 감독

<스카우트>(The Scout, 1994) 마이클 리치 감독

<베일 속의 카이로>(Ruby Cairo, 1993) 그레이엄 클리포드 감독

<하늘에서 온 엽서>(Radio Flyer, 1992) 리처드 도너 감독

<가면의 정사>(Shattered, 1991) 볼프강 페터슨 감독

<금지된 사랑>(Say Anything, 1989) 카메론 크로 감독

<KGB의 아들>(Little Nikita, 1988) 리처드 벤자민 감독

<리갈 이글>(Legal Eagles, 1986) 아이반 라이트먼 감독

<마스크>(Mask, 1985)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크렉커>(Crackers, 1984) 루이 말 감독

<고스트 버스터즈>(Ghostbusters, 1984) 아이반 라이트먼 감독

<여배우 프란시스>(Frances, 1982) 그레이엄 클리퍼드 감독

<장난감>(The Toy, 1982) 리처드 도너 감독

<방황의 도시>(Heart Beat, 1980) 존 바이럼 감독

<인사이드 무비>(Inside Moves, 1980) 리처드 도너 감독

<내일을 향해 쏴라2>(Butch And Sundance: The Early Days, 1979) 리처드 레스터 감독

<챔피언>(Paradise Alley, 1978) 실베스터 스탤론 감독

<투쟁의 날들>(F.I.S.T, 1978) 노먼 주이슨 감독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 1977) 마틴 스코시즈 감독

<베이비 블루 마린>(Baby Blue Marine, 1976) 존 D. 핸컥 감독

<해리와 월터 뉴욕에 가다>(Harry and Walter Go to New York, 1976) 마크 라이델 감독

<니켈로데온>(Nickelodeon, 1976)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샴푸>(Shampoo, 1975) 할 애슈비 감독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1974) 제이 리 톰슨 감독

<형사 콤비 후리비와 빈>(Freebie and the Bean, 1974) 리처드 러시 감독

<바브라의 내사랑>(For Pete’s Sake, 1974) 피터 예이츠 감독

<공포의 그림자>(A Reflection of Fear, 1973) 윌리엄 A. 프레커 감독

<페이퍼 문>(Paper Moon, 1973)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스틸야드 블루스>(Steelyard Blues, 1973) 앨런 마이어슨 감독

<마빈 가든의 왕>(The King of Marvin Gardens, 1972) 밥 라펠슨 감독

<슬리셔>(Slither, 1972) 하워드 제프 감독

<왓츠 업 덕>(What’s Up, Doc?, 1972)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포켓머니>(Pocket Money, 1972)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

<마지막 영화>(The Last Movie, 1971) 데니스 호퍼 감독

<파이브 이지 피이스>(Five Easy Pieces, 1970) 밥 라펠슨 감독

<갈등>(Getting Straight, 1970) 리처드 러시 감독

<이상한 나라의 알렉스>(Alex In Wonderland, 1970) 폴 마주르스키 감독

<공원에서의 차가운 나날들>(That Cold Day In The Park, 1969) 로버트 알트먼 감독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 데니스 호퍼 감독

<사이크 아웃>(Psych-Out, 1968) 리처드 러시 감독

<사베지 세븐>(The Savage Seven, 1968) 리처드 러시 감독

<타깃>(Targets, 1968)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블러드 오브 드라큘라 캐슬>(Blood of Dracula’s Castle, 1967) 앨 애덤슨·진 헤이트 감독

<생이 중단되고 좀비가 된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사람>(The Incredibly Strange Creatures Who Stopped Living and Became Mixed-Up Zombies, 1963) 레이 데니스 스태클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