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장악 지수 ★★★★ 사운드의 개성 지수 ★★
누구나 어떤 기점을 만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터닝 포인트일 텐데 어떤 사람은 그걸 기점으로 몰락하기도 하고, 혹자는 성장하기도 한다. 누구나 일취월장을 꿈꾸겠지만 그건 우연히 오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관성과 예민함이다. 하던 걸 꾸준히, 그리고 무엇보다 잘해야 ‘성장’한다는 얘기다. 밴드에 대해서라면 그린데이의 신작 ≪21st Century Breakdown≫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년 전 ≪American Idiot≫로 거의 모든 계층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그린데이의 ≪21st Century Breakdown≫은 CD 1장에 18곡이 수록되어 있다. 크게 3부로 나뉜 구성의 컨셉앨범인데 전반적으로 다소 평이하게 느껴지는 사운드 때문에 이들의 오랜 팬이라면 ‘나이 먹고 힘 빠진 그린데이’란 인상이 지배적일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느낌이다. 명백하게 부시 정권을 겨눴다고 여겨진 ≪American Idiot≫의 날선 기타 프레이즈는 20세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펑크 밴드가 21세기에도 건재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건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발언의 유무가 아니라 앨범을 완전히 장악한 밴드의 통제력에 의한 것이었다. ≪21st Century Breakdown≫은 ≪American Idiot≫이라는 전환점이 필연적인 결과였음을 드러낸다. 부치 빅의 프로듀싱은 이에 대한 인증 마크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예의 달리는 사운드인 <Know Your Enemy>와 서정적인 <21 Guns>의 간극도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이 18곡은 마치 어떤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들린다.
개인적으로 그린데이를 볼 때마다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어떤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딸의 남자친구가 피어싱으로 무장한 펑크 로커란 사실을 알게 된 유 교수는 그에게 “자네가 믿고 있는 가치를 평생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건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노벨문학상을 꿈꾸는 한국의 원로 소설가도, 90년대에 등장해 세계를 뒤흔든 미국의 펑크 밴드도, 고용불안의 시대를 관통하는 2009년의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예민하면서도 일관되게 살 수 있을까. 스스로 정한 룰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린데이의 가치는 적어도 그 과정을 스스로 보여준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