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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령] 시나리오 좋은 영화 기 살려주자
장미 사진 최성열 2009-05-29

<김씨표류기> 제작한 영화사 반짝반짝 김무령 대표

꼼꼼하다고 했다. 깐깐하다고도 했다. <살인의 추억>을 함께한 봉준호 감독은 2003년 어느 기사에서 그를 두고 “보기와는 달리 천하독종, 철의 여인이다”라고 회고했다. 영화 경력이 20년에 가까워가는 이 여인의 공인된 히트작이라면 <살인의 추억>. 자신의 회사를 차린 뒤 선보인 영화는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표류기>. 모두 마돈나를 꿈꾸던 씨름선수 동구처럼 작아도 귀엽고 알찬 영화들이다. 그러고 보면 <김씨표류기> 상영 전 화면에 떠오르던 영화사의 리더필름, 오리배의 하얀 머리도 왠지 모르게 짠한 구석이 있었다. 하필이면, 화사한 핑크빛 넥타이를 걸어두고 목을 맬까 말까 촉촉한 눈빛으로 고민하던 못났지만 사랑스러운 그 남자 김씨처럼.

주말의 추위를 녹이듯 해가 쨍하던 5월18일 오후. 90년대 초반 영화계에 입문해 판시네마, 신씨네, 싸이더스 등을 거치면서 기획과 마케팅, 제작을 두루 익힌 대표적인 프로듀서 출신의 여성 제작자 영화사 반짝반짝의 김무령 대표를 만났다. 믿을 만한 영화인들이 능력있는 인재 중 하나로 추천하는 그는 어디에 그런 끈기와 강단이 숨어 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작고 마른 여인이었다. 따스한 줄무늬 벽지의 사무실, 창문 틀에는 악틱 몽키즈, 제이슨 므라즈 등의 음반이 그림처럼 놓여 있었다. 그의 취향이, 말하지 않아도, 소소히 배어나왔다. 세상에 막 내보인 자식 덕에 걱정이 많아 보이던 그는 자신의 오리배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또 어디로 향할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해준 감독 인터뷰를 보니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내고 서너편을 구상 중이었는데 당신이 <김씨표류기>가 제일 재미있을 것 같다고 용기를 줬다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상업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기획인데 어떤 면을 높게 샀나. =아이템이 여러 개 있었는데, 다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감독은 지금 말한 그런 부분을 걱정해서 약간 내놓은 듯하더라. 그게 제일 재미있다고 이야기한 건 상업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기보다 일차원적인 느낌이 있었다고 할까.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내가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어떤 점이 재미있던가. =일단 설정이 특별했다. 20자 정도의 아이템에서 시작한 거라서 당시에는 이야기의 결론도 나와 있지 않았다. 좀 못 나가는 남자가 한강에 빠졌다가 결국 밤섬에서 살아간다는, 딱 그 지점이었다.

-강우석 감독이 투자를 해서 시작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 =대부분 똑같은 지점에서 고민하더라. 시나리오는 너무 좋은데 흥행적으로 괜찮을까. 원래 생각했던 예산보다 많이 줄여서 찍는다면 가볼 만하겠다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줄여서 가기가 애매하더라. 밤섬을 턱 내줘서 여기서 다 찍으라고 하지 않는 한은. 그러다 어느 쪽과 이야기가 잘돼서 예산을 조율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이거 가도 되는 걸까 걱정이 많았다. 그때 강 감독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이틀 만에 결정됐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원래 예산은 30억원이다. 조금 오버해서 32억원 정도 된다.

-손익분기점은 얼마인가. =170만명에서 175만명 정도다.

-잘될 것 같나. =모르겠다. 인터뷰 시기가 너무 애매하다. (웃음) 개봉 직후니 안 들어요, 이럴 수도 없고.

-밤섬은 촬영이 불가능한 지역 아닌가. 정재영 인터뷰를 보니 8회차를 밤섬에서 촬영했다고. 서울시에서 협조해준 건가. =<괴물>도 못 들어갔고. 우리도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해봐야 하는 거니까 계속 접촉했다. 사실 밤섬이 시청만 연관돼 있는 게 아니다. 환경연합과 같이 관리하는 거라서 그쪽과도 접촉을 했다. 왜 됐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랑 시기가 잘 맞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다른 로케이션은 어디인가. =총 3군데다. 강변에 해당하는 부분은 밤섬과 충주 강가에서 찍었다. 숲은 두 군데로 나눠서 촬영했다. 영동하고 청원. 밤섬에서 촬영할 때 숲에는 못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제약이 많았다. 최소 인원이 들어가야 하고, 담배는 못 피우고, 음료수만 마실 수 있고. 또 장비를 다 찍어서 이런 장비가 들어간다고 미리 컨펌을 받아야 했다. 63빌딩이니 국회의사당이니 그 건너편의 뷰가 굉장히 중요해서 좀 고민스러웠다.

-CG의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 예산의 몇 퍼센트 정도인가. =영화 초반에 정재영이 유람선을 보고 살려달라고 하는 장면 빼곤 밤섬신의 배경은 거의 다 CG다. 물량에 비해 워낙 정해진 한도에서 맞춰준 거라 예산의 몇 퍼센트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여자 분량에도 꽤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든지 판타지라든지. 꼼꼼히 따져봐야겠지만 화면의, 어쩌면, 70%가 CG일 수도 있다.

-첫주 박스오피스 성적을 보니 관객 수 29만명으로 3위에 올랐더라. <7급 공무원>보다 상영관 수가 적던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물론 한국영화까지 크고 센 영화가 많다 보니 극장 잡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배급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 아무래도 그런 배급사들은 자기네 영화들이 걸려 있는 상황 아니겠나. 한편으로 <김씨표류기>가 확 벌여서 갈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이건 뭐 관계자여서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김씨표류기>는 진짜 사람 같은 구석이 있는 영화다.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저 밑에서부터 혼자서 용쓰면서 올라오는 그런 느낌이 있다. (웃음) 얘 참 용쓴다, 애쓴다 그런 느낌이 드는 좀 이상한 영화다.

-최종 성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길게 가야 빛을 볼 영화가 아닐까. =그렇다. 그래야 할 것 같고. 반응이 아주 안 좋으면 뭐, 그런가 보다 할 텐데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 뭐가 확 안 올라오니까. 근데 무대인사 하느라고 주말에 부산에 갔다 왔는데, 어휴, 영화가 너무 많다. 6월에는 더 무시무시한 영화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천하장사 마돈나>도 그러지 않았나. =그건 조금 다른 게 <천하장사 마돈나>는 <김씨표류기>에 비하면 흥행을 기대할 수 있는 요소가 훨씬 적었다. 정말 낯선 이야기고. 사실 (류)덕환이도 알려지긴 했지만 그 배우 하나로 메인으로 가기에는…. 백윤식 선생이야 정말 특별출연인 거고. 적당히만 되는 것도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아이템이었다.

-크레딧을 보니 삽입곡 중 하나에 작사가로 이름이 올라와 있던데 직접 참여한 건가. =이번에 데뷔했다. (웃음)

-곡 제목이 뭔가. =<Too Much World>. 김홍집 음악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도 같이 했는데, 내가 작사를 해보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카피 작업하다가 가사가 됐다. 예정된 곡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로드쇼> 기자가 될 뻔했다고 들었다. 원래 영화 기자의 꿈도 있었나. =영화쪽이나 방송쪽이나 그땐 비슷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로드쇼>에 들어갔는데 편집장은 기자를 충원하고 싶어 하는 반면 회사에선 충원을 안 해주는 그런 상황이었다.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라.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는데 결국 안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화사쪽으로 가게 됐다.

-직업으로 영화 일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좋았기 때문인가. =그렇다. 고등학생 때도 혼자 극장에 자주 갔다. 대학 때는 방송국에서 피디를 했었는데 영화가 좋으면 돌아오는 길에 영화음악 LP를 한장씩 사가지고 왔다. 대학 방송국에선 주기별로 모여서 판을 사러 다니거든. 내가 있는 동안에는 영화음악이 많이 늘어났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목표는 없었나. =없었다. (웃음) 내가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때는 프로듀서라는 명칭이 없었다. 피디가 될 거야, 제작자가 될 거야, 생각하지는 못했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왔던 것 같다. 오히려 92년에서 93년쯤 홍보 일을 했을 때 영화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영화제가 이렇게 많지 않았고, 우리나라 영화들이 외국에 나가는 일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준비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영화사 이름이 반짝반짝이다. 어떻게 지었나. =싸이더스에 있으면서 개발한 아이템 중 하나가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반짝반짝 빛나는>이다. 그게 예정대로 잘 갔으면 반짝반짝의 첫 번째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아이템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그 영화는 계속 보류 중인가. =그렇다. 시나리오는 있지만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다. 여러 감독, 배우와 이야기하다가 뭐가 잘 안 맞아서 여태까지 홀딩 상태인 셈이다.

-반짝반짝에서 내놓은 두편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표류기>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감독이 같아서이기도 할 텐데, 당신의 취향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작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취향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해야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게 사실 걱정이다. 가끔 시나리오는 좋은데 확 당기지 않은 아이템도 있는 것 아닌가. 예를 들면 회사 상황상 이건 가주면 좋을 텐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만 해주는 경우라면 괜찮겠지만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면. 그런 순간이 올 것 같다. 그때 고민해봐야겠지만.

-어떤 영화에 끌리는 편인가.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있었다. 무대인사 다니느라 (정)재영씨랑 거의 붙어다녔는데, 얼마 전에 무슨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더라. 재영씨가 영화를 아주 많이 보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영화를 거론하면서 봤냐고 물어봤는데 거의 안 봤어. 그래서 DVD 다섯개를 챙겨와서 꼭 보세요, 이러면서 줬다. 그러니까 아, 이런 것만 좋아하는구나 그러더라고.

-어떤 영화들이기에. =<타인의 삶> <아무도 모른다> <바벨> <어바웃 어 보이>, 또 하나 뭐지? <미스 리틀 선샤인>은 좋아하는데 그건 보셨더라고. 그런 거였다. 재밌잖나.

-얼핏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흥행된 게 뭐가 있어요, 그러더라고. (웃음) 음, 글쎄. 아무튼 어떤 영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재미있는 영화가 좋다. 근데 그 재미라는 게 여러 가지 색깔을 띨 수 있는 거잖나. 말주변이 없어서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없다. 다음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이런 이야기해서 참 슬픈데 장사가 돼도 최소한 이 정도는 되는구나, 이런 걸 보여줘야 할 텐데 또 검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물론 내 걱정부터 해야겠지만, 시나리오는 좋지만 장사가 될까 고민스러운 다른 이야기들이 영화화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그래야 강 감독님 같은 분이 단박에 이런 이야기를 결정해주신 데 힘을 실어드릴 수도 있을 텐데.

-개인적인 목표는 뭔가. =돈 많이 버는 거다. (웃음) 아니, 딱 정해놓은 건 없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그걸로 영화를 개발하고 진행해서 개봉하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만 돼도 좋겠다.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는데 그것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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