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사람들
[spot] “나로선 극기훈련이었다”
김용언 사진 오계옥 2009-05-28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배우 문창길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양천수 화백이 등장하는 순간 “저 배우 TV에서 많이 봤는데…”라고 수군거리는 관객이 많았다. 양 화백 역의 문창길은 드라마 <여인천하> 이후 오랫동안 연기를 쉬다, 젊은 아내와의 ‘새 삶’에 만족하는 유명한 화가라는 인상적인 역할로 돌아왔다. 다시 신인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배우 문창길을 만났다.

-<여인천하> 이후 오랜만에 연기를 재개했다. =7년 만인 것 같다. 예전부터 하던 음식점 사업을 미국에까지 확장하면서 3년 동안 외국을 들락날락하다보니 연기쪽과 거리가 멀어졌다. 연기를 쉬기 직전 <용의 눈물>의 조준 대감으로, <여인천하>의 남곤 대감으로 연달아 출연해서 사극 배우라고 많이들 기억하시는 것 같다. TV 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도둑들의 무도회>처럼 주로 연극에만 충실했었으니까, 관객은 낯설어할 수도 있겠다.

-따님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연출부로 참여한 인연으로 양천수 화백을 연기하게 됐다고. =우리 딸 자랑 잠깐 하자면(웃음), 문혜성이라고 이제 칼아츠 대학원에서 연출 공부한 다음 좋은 감독이 될 친구다. 이름 꼭 기억해달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촬영이 제천에서 시작했을 때, 딸애 걱정도 들고 해서 스탭들한테 밥이라도 한끼 대접할 겸 촬영장에 들렸다. 감독님과는 깜깜한 모텔 복도에서 잠깐 인사만 나눴는데, 어떻게 보셨던 건지 그 뒤에 딸아이가 출연할 생각 있냐고 묻더라.

-홍상수 감독의 독특한 연출방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연출 방식을 미리 알았으면 대비를 하든가 아니면 ‘난 절대 못해’ 하면서 겁먹고 거부했겠지. 전혀 모르니까 무작정 부딪쳤다. 워낙 오랜만에 연기하느라 적응하기도 힘든데, 감독님도 특이한 방식으로 연출하고 영화 자체가 장면마다 원신 원컷이니까 곤혹스럽더라. 어차피 시작했으니 끝까지 잘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로선 극기훈련이었다. (웃음)

-사회적 성공과 가정의 행복을 모두 누리는 양천수 화백에 대한 남성 관객의 반응이 뜨겁다. (웃음) 이 캐릭터를 어떻게 파악했나. =촬영할 때야 당일 아침마다 쪽대본을 받으니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홍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눈치가 빨라야겠더라. 어떤 인물이라고 대충 얘기는 들어도, 이 캐릭터가 매일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끝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 젊은 사람들에겐 욕심이나 질투가 있다. 하지만 양천수는 나이도 들었고 경험도 많고, 이젠 인생의 다른 걸 느끼게 됐다. 욕심도 없어지고 정말 행복하고, 다른 사람 만날 필요 없이 작품에만 몰두하면서 착하고 예쁜 와이프 보는 희망으로 사는 거다. 편집된 장면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양천수 집 마당의 연못에서 붕어를 키우는데, 따오기인지 왜가리인지 새가 자꾸 와서 붕어를 잡아먹는단 말이다. 그래서 양화백이 새를 쫓는 장면이 있었다. 고순에 대한 마음을 비유하는 장면이었겠지.

-양화백이 구경남을 욕하는 조씨에게 “그러지 마, 똑같은 사람인데”라고 말하는 부분은, 홍상수 감독의 평소 생각을 옮겨놓은 것 같다. 일전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참 좋은 친구다’라고만 생각하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사람인데’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양천수도 질투를 안 느낄 순 없지만, 흔한 말로 긍정하면서 사는 사람인 거다. 와이프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으니까, 또 고순이라는 아내가 과하다고 느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이 과분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내가 빨간 티셔츠 입고 나오는 바닷가 장면. 내 배를 보고 내가 충격받았다. (웃음) 연기 쉬면서 술이랑 밥을 맘껏 먹었더니 그렇게 살이 붙은 줄 몰랐다. 영화 보고 나서 바로 다이어트 들어가서 한달 사이에 6kg를 뺐다. (웃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많을 것 같지 않다. 감독님을 잘 만나서 공부를 무진장했고, 행운이었다. 신인으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가을에 방영할 드라마 <올인2: 태양을 삼켜라>에서 대기업을 상대하는 대부업자로 나온다. 좋은 인물인지 악한 인물인지는 아직 연출자가 말을 안 해줘서 모르겠다. (웃음)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