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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화적 도발을 꿈꾼다, <블레이드 러너>
2001-11-28

나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하는 말 대부분은 “야! 나 너 누군지 몰랐어. 너무 변해서 못 알아봤어. 아이라인 보고 알았다 야!”이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내 취향은 주로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외향적인 모습이나 행동거지, 또는 말투 등이…. 물론 나라는 특이한 캐릭터가 혼합되어 남들은 내가 영화주인공을 패러디했다는 것을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내 모습이 어느 영화주인공의 그것인 것을 깨닫고 가끔은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나는 반항적이고 도발적인 레옹을 사랑하는 소녀 마틸다가 되었다가 <청춘스케치>의 자유와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엘레이나가 되기도 하고 엉뚱하게도 실존생활에서 절대 제정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거침없는 <배트맨 포에버>의 포이즌 아이비라든가 캣우먼 같은 관능적이고 섹시한 여자만의 힘을 가진 그들만의 그것을 닮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인생과 관련된 영화를 꼽으라면 항상 이 영화가 떠오른다. <블레이드 러너>. 한동안 테크노에 빠져 있을 때 이 영화를 보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줄곧 스토리를 만들어 혼자 흥분하곤 했는데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에서 왠지 모를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난 이 영화를 벌써 10번 넘게 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 SF물이 8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어느 것 하나 유치한 부분도 어설픈 부분도 없다. 미래도시에 관한 이야기인데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리플리컨트들(일종의 사이보그)을 쫓는 블레이드 러너와 그가 사랑하게 된 고성능 여성 리플리컨트. 또 그가 쫓는 리플리컨트들의 정해진 운명과 그들을 만들어낸 로봇회사의 사장. 무엇보다 의심쩍은 행동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은 사건현장마다 종이접기를 남기고 가는 형사이다. 나는 그가 너무 궁금해 나중에 그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형사버전 <블레이드 러너>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전자제품(?)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보다 더 인간적인 이야기는 있을 수 없을 듯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은 영상이다. 모든 것이 그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믿기지 않을 만한 표현력이다.

채 10년도 되지 않아 <스타트렉>에서 나온 전화기가 스타텍이란 이름을 달고 휴대폰으로 쓰이고 <매트릭스>에서 나온 노키아 전화기도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단지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영화를 통해서 단 몇년의 세월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내가 그런 것(SF, 미래도시, 사이보그 등)에 관심이 많아 더욱더 감회가 새로울 수는 있겠지만 누구도 생각지 못한 (특히 그 시대에) 그런 영화가 만들어질 때쯤 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인데 같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창피한 생각마저 든다.

사실 이 영화는 필립 K. 딕의 <앤드로이드는 전자 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소설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와 모티브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하지만 내용과 감동에선 책보다 영화가 나의 입맛에 맞아떨어졌다. 이 영화는 같은 시점에 나와 1982년 당시 대흥행을 기록했던 영화 에 가려 ‘저주받은 걸작’이라 했다. 나는 그 당시로 돌아가 리들리 스콧을 위로하고 싶어진다. 리들리 스콧, 지금은 또 얼마나 먼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기획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와 그처럼 뿜어져나오는 미래에 대한 느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빨리 따라잡고 싶다. 내 세계가 지금은 날 인정하지 않아도 10년 뒤에 아니 20년 뒤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경제적이거나 현실적인 문제는 너무나 힘들겠지만 그렇게 해서 문화에 어떤 충격이든 던질 수 있다는 그 용기와 행동을 나는 높이 사며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다.

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이 영화가 나는 좋다. 이제부터 보게 될 모든 영화의 상황과 주인공, 때론 아름답고 때론 귀엽고 때론 험악하고 때론 우울하고 때론 배고플 수 있는…. 나는 내 실생활에서 모두 즐기며 느껴보련다. 나는 나를 당혹스럽게 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그런 영화를 기다려본다. 내 인생은 패러디 극장의 언제 어디서 상영될지 모르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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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윤정/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