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장이모의 <인생>이다. 역사의 오류를 그린 영화지만, 나는 그 역사의 오류 앞에서 끝내 선의를 잃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 늘 감동한다. 장이모의 영화답게 <인생>의 배우들은 귀신처럼 연기한다. 브레히트가 이 영화를 봤다면, 공리의 연기에 몰입되어 ‘소격 이론’의 관념성을 자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장난스런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좀더 사적인 차원에서라면, 앨런 파커의 <커미트먼츠>를 좋아한다. (한번쯤 밴드를 꿈꾸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만) 밴드를 꿈꾸었기에, 나는 밴드가 충분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심란스런 땅 북아일랜드의 젊은이들(실업연금을 타먹는 건달, 집에서 애보는 처녀, 정육공장 노동자, 허풍선이 난봉꾼…)이 모여 솔 밴드를 만든다. 밴드의 첫 연습날, 당구장 이층 창고에 ‘머스탱 샐리’가 울려퍼지는 장면은 언제 봐도 뭉클하다. 흑인도 아니면서 왜 솔을 하느냐는 질문에 밴드의 발의자가 대답한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아프리카고,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아프리카며, 더블린은 북아일랜드의 아프리카다. 우리는 검고, 검은 건 아름답다.”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내게 좀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세상만사, 불놀이야, 컴백, 아이 러브 로큰롤…. <커미트먼츠>의 음악들은 단지 좋은 솔 음악들이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음악들은 내가 밴드를 꿈꾸던 시절의 구체적인 레퍼토리들이다. 밴드의 출발에, 신중현을 신으로 옹립한 인탤리들에게서 철저히 무시당한 송골매(특히 블랙텔트라와 통합 전의 송골매는 가장 한국적인 록을 구사한 밴드였다)의 ‘세상만사’가 세심하게 배치된다. 일류밴드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음에도, 영화의 모든 연주들은 (심지어 연포 해변의 임시 디스코장의 연주마저도) 그 시절 밴드의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거기에 기타 피킹 하나, 드럼 필인 하나 오차없는 정교한 동작 연출이 보태진다.
“지금까지 저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사랑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미 몰락중임을 알리는 대사로 등장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영화 내내 몰락한다. 음악에의 열정 따윈 고등학교 밴드 시절의 플래시백에서나 되새겨질 뿐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색소폰 주자, 기타 둘(혹은 기타 하나 키보드 하나) 베이스 드럼이라는 밴드의 전통 편제가 신시사이저에 해체 된 뒤 마약을 찾는 드러머, 술에 찌들어 연주하다 쓰러지는 노악사, 난잡한 가라오케 파티에서 옷을 벗긴 채 연주하는 밴드의 리더…. 밴드의 몰락을 지시하는 풍경들은 끝없이 나열된다.
그 풍경들은 한국인들의 팍팍한 삶을 지시한다. 한국인들의 삶에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문화란 대학생 시절(은 출신 성분을 막론하고 다종다양한 문화를 소구하는 유한함이 허락되는 시기다. 이 글이 실리는 잡지를 포함,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문화상품의 구매자들 역시 대개 그들이다.) 혹은 청년 시절 언저리에 잠시 존재하는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한국인들의 삶에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 가운데 문화를 소구하는 데 사용되던 부분은 군대, 취업, 결혼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진작에 박살이 났다. 그들이 언젠가 가졌던 이런저런 문화적 취향들은 갖은 차이를 막론하고 끈적끈적하고 처연한 트로트로 대거 통합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심수봉의 트로트 <사랑밖에 난 몰라>를 연주하며 다시 출발한다. 그 곡은 밴드가 수안보에 흘러들어와 “야간업소의 비틀즈”라 소개받으며 연주한 함중아 밴드의 트로트 <내게도 사랑이>보다 한층 본격적인 트로트이다. 조명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보컬은 고등학교 밴드 시절 ‘아이 러브 로큰롤’을 당차게 부르던 소녀다. 그 시절 분명 트로트를 경멸했을 그는 이제 무대 위에 서서 트로트를 부른다. 다시 출발하는 세 사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이제 그들의 음악과 삶은 트로트로 통합되었고,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자막이 오르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모든 평범한 한국인들의 가련한 삶 앞에 정중하게 헌정된다.김규항/출판인 gyuhang@ma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