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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티플레저] 조는 것도 주님의 뜻이니…
2009-05-15

최현정의 ‘예배시간 쪽잠 자기’

<그분이 오신다>

일요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며, 난 또다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 되어버린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이 복도에 서서 밖으로 나가는 성도 한명 한명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해주시는데, 난 오늘도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멀리 돌아 교회 밖으로 나온다.

아무래도 울어야 하는 쪽에 가까운 기분이다. 오늘도 예배 시간에 자고 말았다. 희한한 일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면 나의 몸도 슬슬 잠에 빠져들 준비를 한다. 눈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며, 기분 좋은 나른함이 온몸을 감싸는 것이다.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설교 말씀이 귓가에 살랑대는 자장가처럼 아득히 멀어지고, 나는 어느덧 꿈까지 꾸며 자고 있다. 신기한 건 참으로 달게 한껏 잠에 취해 있을 때에도 절대 놓치지 않는 단 한마디가 있으니, “자, 기도합시다”라는 한마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말은 이제 설교가 끝났으니 마무리 기도를 하자는 뜻이다. 결국 난 설교 말씀은 빠뜨린 채 마지막 기도만 열심히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짐작이 가겠지만, 나의 마무리 기도는 끝없는 회개로 채워진다. “하나님, 제가 정말 졸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잠깐 달콤한 안식을 취했습니다. 이런 저를 어여삐 여기사, 저의 죄를 사하여주시며….”

고백하건대 이런 쪽잠과 그에 대한 회개는 이제 단숨에 끊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인 나만의 관례가 되어버렸다. 딱딱한 교회 의자에 앉은 채로 잠시 빠져든 잠은 정말이지, 침대에 편히 누워서 자는 그 어느 날의 늦잠보다도 달콤한 것이다. 도무지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없지만, 내겐 사실이다. 일요일에 하루 종일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뒹굴뒹굴해도 저녁까지도 몸이 무겁고,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다면 나를 한번 따라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권하고 싶을 정도라는 것이지, 권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쪽잠의 효과에 대해 말하라면 나에게 있어선 믿기 힘들 만큼 대단하다. 일주일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주는 위력이 있는 것이다. 이 꿀잠 뒤 ‘기도합시다’를 신호로 반짝 눈뜬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아마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벼워 보였으리라. 물론 이렇게 자고 나면 누가 날 볼까 두려워 감히 주변을 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찌뿌드드했던 온몸은 사우나에 다녀온 듯 개운해지고 그제야 머릿속이 맑게 갠다.

옆에서 나를 쿡쿡 찌르며 어떻게든 깨워보려는 언니에게, 나를 이 달콤한 잠에 빠져들게 하신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니 내가 그토록 달게 자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감히 항변해보기도 하지만, 진심을 말하자면 나는 이 단잠에 취해 있으면서도 늘 죄책감을 느끼고, 다가오는 다음 주일에는 결코 졸지 않으리라 허벅지를 꼬집으며 다짐하는 어린 양이다. 심지어 나는 나와 같은 처지의 어린 양들에게 동병상련의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내 옆줄, 혹은 저 앞줄에 앉아 나와 비슷한 모양새로 자고 있는 몇몇의 어린 양들. 아마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 불려간다면 함께 손잡고 나란히 불려가 있을 것이다. 신성한 교회에서, 그것도 설교 시간에 남몰래(라고 주장하고 싶다!) 누리는 쪽잠. 이 괴벽을 감히 입 밖에 내어 고백할 용기를 낸다. 이번주 설교에서 들은 말씀을 믿기에(다행히도 이 말씀은 자, 기도합시다, 이후에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그 순간,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리니. 하나님, 저의 달디단 쪽잠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현정 MBC 아나운서. 현재 이재용 아나운서와 함께 MBC TV <기분 좋은 날>을 진행하고 있으며 <100분 토론>에도 보조진행자로 출연하고 있다. 또 매일 아침 6시 MBC 라디오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로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고 있다.

최현정/ MBC아나운서 사진제공 MBC